의회와의 권력분담 포석/옐친 왜 최후통첩 엄포놓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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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의회와 더 이상 타협 불가능 판단/군부지지 불확실 모험은 못할듯
2일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표명한 비상조치 실시용의는 최근 격화되고 있는 러시아 보혁대결의 극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민주세력들은 의회와는 더 이상 타협할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입법부와 행정부의 권한한계를 모호하게 규정해놓은 현행 헌법은 폐기하고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골자로 하는 신헌법을 채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옐친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보수파와 의회에 대한 민주세력 최후의 경고내지 결의로 볼 수 있다. 통치권자에게 있어 헌정중단과 비상사태 발동 외에 다른 어떤 수단도 없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옐친대통령이 이러한 발언을 했다고 해서 곧바로 비상조치 선포와 같은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비상조치를 선포하려면 우선 이에 합당한 법적명분과 수단이 있어야 하지만 현재 옐친대통령에게는 두가지 모두 없기 때문이다.
헌법을 수호하기 위해 헌법을 파괴한다는 것은 그 의도가 어디에 있건 일종의 쿠데타이기 때문이다. 또 의회와의 지루한 공방에 러시아 국민 모두가 염증을 느끼고 있다. 최근들어 민주세력 일부에서 의회해산과 대통령 퇴진후 원탁회의 형식의 제헌회의를 소집하자는 주장이 점점 심도있게 논의되고는 있으나 대부분 국민들은 평화적 방법으로 정치갈등이 해소되기를 원하고 있다.
현재 정국을 장악하고 있는 중도·보수 연합세력인 시민동맹 등은 옐친대통령의 개혁정책 수정을 요구하고 있고,개혁의 부작용에 실망을 느끼고 있는 상당수 국민들이 이에 동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비상조치에 군부가 과연 얼마나 지지할지도 의문이며,의회도 그들 스스로 보호할 수천명 규모의 의회경비대를 확보하고 있어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현행 헌법상 의회해산을 명하는 대통령 포고령의 경우 곧바로 대통령의 권한이 자동 박탈되도록 규정돼있어 옐친대통령은 의회와 타협하는 외에 달리 취할 수 있는 카드는 거의 없다.
옐친대통령이 국민을 믿고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할 수도 있겠지만 이 경우 러시아의 분열은 현실로 나타나 지역분쟁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다. 또한 비상시 최고 정책 결정기관인 안전보장회의 등을 통해 임시체제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국정을 끌고갈 수는 있겠지만,이것도 현행법 테두리 안에서는 몇개월 이상을 지속하기 어려워 가능성이 희박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따라서 옐친의 이날 발언은 이달중 소집될 예정인 임시인민대표대회에서 대통령과 의회간의 권력분립 원칙이 옐친측에서 제시한 기본원칙을 살리는 식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강력한 의지 및 경고의 표시로 해석할 수 있다는게 중론이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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