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장 모르는 엔고 행진/1달러에 116엔대 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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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서방국서 적자 줄이려 유도/미·유럽 인플레 염려없어 더욱 “쾌재”/일측도 무역흑자 줄일 호기로 간주/G­7서 일 강력반발땐 엔폭락 가능성도
일본 엔화가 매일 치솟아 최고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이달들어 약 2주동안 달러당 1백24∼1백26엔에서 1백16엔으로 급등했다. 달러화에 대한 엔화가치는 이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오를 조짐이다. 달러당 1백10엔대까지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일본 업계에서는 급격한 엔고가 일본의 경기회복을 지체시켜 불경기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반면 일부에서는 이를 내수확대와 방대한 무역흑자를 축소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환영하는소리도 나오고 있다.
엔고는 지난 9일 빌 클린턴 미행정부에 영향력이 큰 프레드 버그스텐 국제경제연구소(IIE) 소장의 엔고용인(달러당 1백∼1백10엔) 발언을 계기로 급속히 진행되기 시작했다.
버그스텐의 이같은 발언은 클린턴 행정부의 의사로 간주돼 엔화는 달러당 1백24엔대에서 일거에 1백22엔대로 뛰어올랐다.
이어 로이드 벤슨 미 재무장관이 지난 19일 엔고용인 발언을 함으로써 엔화는 1백19엔대로 들어갔다.
이같은 엔고추세는 한해 1천3백26억달러라는 일본의 방대한 무역흑자를 배경으로 한 잠재적 엔고압력이 일거에 표면화한 것이다.
또 외환시장에서는 최근 세계적으로 인플레 우려가 가시고 장기금리가 내려감에 따라 미국·유럽각국이 일본과의 무역불균형문제를 시정하는 수단으로 엔고를 유도하는 쪽으로 기울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외환시장의 투기자금은 오는 27일 열리는 선진7개국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G­7)에서 엔고 유도정책이 발표되리라는 기대로 모두 「엔 매입,달러 매각」쪽으로만 몰려들었다.
이번 엔화급등은 유럽 통화불안으로 달러당 1백20엔대가 무너진 지난해 9월의 엔고와는 그 배경이 크게 달라 엔고현상의 지속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9월에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인플레 우려로 계속 엔고를 유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원유 등 1차 산품시세가 안정되고 세계경기의 침체로 각국에서 인플레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됐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 각국은 엔화에 대해 자국통화의 가치를 내려도 물가에 큰 영향이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게 됐다.
이같은 엔화급등에 대해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은 『미국이 재정적자를 삭감하는 대신 일본은 내수확대로 수출주도형의 경제구조를 전환할 호기로 엔고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전제,『일본의 수출이 일시적 타격을 입고 국내소비가 더욱 부진해지는 등 2중의 타격을 받을 우려가 있으나 일본기업은 이를 극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미국 일부에서는 인위적 엔고 유도가 일본의 무역불균형 시정에 큰 도움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일본의 내수확대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는 소리도 나오고 있다.
G­7회담에서의 엔시세에 대한 목표권 설정에 일본이 강력히 반발,엔고유도책이 합의되지 않을 경우 엔화는 G­7회담을 고비로 투기자금들의 엔화 투매로 달러당 1백19∼1백20엔대까지 떨어질 것이라는 엇갈린 전망도 나오고 있다.<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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