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4624)제89화 내가 치른 북한 숙청(6)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남로당파 제거>(1)
남로당파 인사들의 검거선풍이 불기 시작한 것은 52년 10월부터였다.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북한의 숙청사중에서도 가장 대규모였던 남로당파 숙청사건은 북한정권 수립 때부터 이미 잉태됐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후부터 「숙명적」으로 시작된 수상(김일성)과 부수상(박헌영)간의 정쟁은 날이 갈수록 그 골이 깊어져 갔다.
이런 가운데 두 사람의 권력암투는 전쟁이란 새로운 환경을 맞아 잠시 잠복해 있다 마침내 전쟁와중에서 폭발, 남로당파에 대한 피의 대숙청으로 끝을 맺었다.
무모한 전쟁계획에 의해 비참한 결과를 자초했던 김일성은 전쟁의 책임추궁을 모면하기 위해 책임전가의 최초 조준을 소련파 리더 허가이에게, 두 번째 조준을 남로당 총수 박헌영에게 각각 맞춘 것이다.
당시 북한의 핵심권력 주변에선 남로당파 인사들의 검거선풍이 있기 1년 전부터 이 같은 분위기를 충분히 읽을 수 있었다.
전쟁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던 51년 가을이었다.
우리가 수도 평양을 비우고 후퇴, 인민군 최고사령부(최고사령관 김일성 수상)는 중국의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는 압록강 주변 고산진에, 내각의 각 부처는 자강도 강계에 각각 피난 가 임시방공호에서 전쟁업무를 수행하고있을 때였다.
11월7일 강계에서 조금 떨어진 만포에 피난 가 있던 소련대사관은 김일성·김두봉·박헌영·허가이 등 북한의 주요인사 30여명을 초청, 볼세비키 혁명 44주년 기념파티를 했다.
강원도당 부위원장을 거쳐 내각 간부학교장이었던 나는 벼슬이 낮아 이 자리에 초청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 파티에 참석했던 당시 조-소 문화협회 부위원장이었던 소련파의 엘리트 박길룡(후에 동독대사·외무성부상등을 지내다 소련으로 돌아가 소련과학아카데미 동방학연구소 수석연구원이 됨. 정년퇴직 후 현재 모스크바에 거주)으로부터 파티의 분위기를 소상히 들었다.
이날 밤 김일성은 패전의 아픔을 삭이려는 듯 주위에서 권하는 술을 거절하지 않고 모두 받아 마셨다고 한다.
반면 평소 술을 좋아하지 않는 박헌영은 김일성 맞은편 자리에서 소련어로 라소바예프 대사와 둔킨 공사 등 소련인사들과 담소하고 있었다.
거나하게 취한 김일성이 박헌영에게 느닷없이 강한 어조로 한마디 던졌다.
김일성: 여보, 스탈린 대원수께 패전의 원인을 어떻게 보고하려고 하는가.
박헌영: 아니, 그게 무슨 소리인가. 패전의 원인을 왜 부수상이 보고하는가. 그것은 당연히 최고사령관인 수상동지가 보고해야지.
김일성: (약간 열을 받은 어조로) 여보, 이론가(김일성은 가끔 박헌영을 이렇게 불렀음). 작년 4월 우리가 함께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 대원수를 만났을 때 당신 입으로 뭐라고 했는가. 우리 인민군이 산보하는 기분으로 서울까지만 밀고 내려가면 남로당 지하당원 수백만 명이 폭동을 일으켜 남한을 삼키는 것은「식은 죽 먹기」라고 보고하지 않았는가.
박헌영: 그렇지.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사실이오 .
김일성: 그러면 왜 남로당 지하당원들은 폭동을 일으켜 이승만 정권을 뒤엎지 못했는가.
박헌영: (잠시 안경 속의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차질이 있었던게요. 솔직히 시인하지. 그러나 최고사령관인 수상동지는 패전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다음 세 가지 문제에 대해 인민들에게 확실한 답변을 해야 할거요. 첫째 당신의 전술 가운데 중대한 실수는 서울의 주력부대를 빼내 낙동강까지 보낸 것이었다. 둘째 미군의 상륙작전에 대한 정찰대의 정보가 늦어 많은 인민과 인민군이 희생됐고 작전에 큰 차질을 가져왔는데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최고사령관인 수상동지의 책임이 아닌가. 셋째 노동당 정책 역시 전쟁수행에 맞지 않은 것이 많았다. 이것도 결국 당위원장인 수상동지의 책임이다.
박헌영의 노골적인 공격을 듣고 있던 김일성은 『이 개자식』이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옆 책상 위에 있는 유리로 만든 잉크 스탠드를 집어 박헌영을 향해 던졌다.
박헌영이 재빨리 피하는 바람에 맞지는 않았지만 잉크 스탠드는 벽에 부딪쳐 박살이 났다.
이를 지켜보던 라스바예프 소련대사가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들끼리 이게 무슨 짓인가. 손님들이 남의 잔치를 난장판으로 만들려고 작정하고 왔는가』며 화를 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원색적인 폭언까지 퍼부으며 한참동안 언쟁을 계속했다.
이를 보다 못한 둔킨 소련공사가 뒷짐만 쥐고 있는 수상·부수상의 부관들을 불러 『정신 나간 놈들, 빨리 저 「개싸움」을 말리지 않고 뭘 하느냐』고 호통을 치자 그때서야 부관들이 몰려가 언쟁을 말렸다.
이날 밤 파티는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결국 깨지고 말았다. <전 내무성부상 강상호>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