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INSIDE PITCH PLUS 17] 투수가 거쳐 가는 18 계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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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탈 때마다 ‘계단’에 대해 생각한다. 올라갈 때는, 한꺼번에 많은 계단을 뛰어오르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차분히 한 계단씩 올라가면 결국 모두 오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내려갈 때는, ‘올라왔으면 내려가야 한다’는 일종의 ‘숙명’을 느낀다.

‘메이저리그 투수가 거치는 18단어’를 본 적이 있다. 그냥 스쳐 보내기에는 뭔가 메시지를 줄 수 있는 단어들. 그 단어가 혹 인생의 18단계는 아닌지 가슴에 꽂혔다.

1. Prospect(기대주)= 야구공을 손에 쥐는 순간, 평범한 선수를 꿈꾸는 사람은 없다.

2. Phenom(유망주)= 메이저리그로 가는 계단에서, 유망주로 꼽히지 않는 인물이 어찌 있으랴. 주위의 시선을 받기 시작하는 시기다.

3. Regular(주전)= 빅 리그에 매일 선다는 것. 내 자리가 있다는 것. 그건 곧 성공을 뜻한다.

4. Star(스타)= 그 다음엔 ‘스타’가 된다. 리그 전체에서 주목을 받는 시기다. 예를 한번 들어볼까. 지금의 류현진? 이대호?

5. Established Star(완성된 스타)=기량뿐만 아니라 그 인성까지 무르익는다. 그래서 ‘스타’라는 말 앞에 ‘완성된’ 이라는 단어를 더 붙여준다. 손민한?

6. Hero(영웅)= ‘플레이어’로서의 개념을 지나 ‘아이콘’으로 인정을 받게 된다. 야구장 밖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는 단계다. 홍성흔?

7. Celebrity(명사)= 영웅의 단계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다. 거칠 것 없이 계단을 밟아 올라 그 맨 꼭대기. 이승엽?

8. Disappointment?(실망?)= 그 절정은 영원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아픔의 계단. 지칠 줄 모르고 치솟던 상승의 곡선이 꺾이는 시기다. 앞 계단을 모두 거친…박찬호?

9. Comeback Kid!(돌아온 영웅!)=스타에게 실망은 종점이 아니다. 재기를 시도한다. 조성민? 정민철?

10. Leader(리더)= 이제 야구에서나 인생의 경험에서나 성숙한 단계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이끌 수 있게 된다. 송진우?

11. Controversial Leader(리더냐 아니냐)= 영원한 리더는 없다. 주위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다. 이종범?

12. Trade Bait(트레이드 대상)= 팀에서 꼭 필요하지는 않다며 고개를 젓는다. 내 잘못은 크게 없는데… 마해영?

13. Appreciated Elsewhere(다른 팀의 환영)=그래도 다른 팀에서는 아직 쓸 만하다며 나를 반겨준다. 선수 이름 거명이 쑥스러워지기 시작한다.

14. Disabled(몸이…)=몸이 말을 안 듣는다. 잦은 부상이 찾아온다. 유니폼마저 무거워진다.

15. Restored(복원)=그래도 가슴에서는 할 수 있다고 한다. 재활과 보양식으로 선수생명을 이어간다.

16. Veteran(노장)=이젠 주위에서 노장이라는 말을 한다. 자신은 그냥 베테랑이란 단어가 좋은데.

17. Hanger-On(어떡하든-)=팀에 매달려 버티는 시기다. 경기에 내보내 주질 않는다. 동료와 아들의 나이가 비슷해진다.

18. Ex-(前-)=무대 뒤로. 선동열도, 장종훈도. 모두가 이름 앞에 한 글자가 더 붙는다.
난 어디쯤?

이태일 네이버스포츠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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