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대한 사진의 깊은 생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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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호 21면

사진이라는 매체가 등장하면서 회화는 더 이상 ‘재현’에 집착하지 않는다. 어떤 그림도 사진보다 현실을 잘 재현할 순 없기 때문이다. 원근법적 환영에서 벗어난 현대 회화는 평면·색채·선과 같은 본질적 요소에 집중하게 됐다.

국제현대사진전-플래시 큐브(Flash Cube) 9월 30일(일)까지 삼성미술관 Leeum 기획전시실, 문의:02-2014-6901

반면 사진은 1930년대 즈음 예술의 한 형태로 인정받은 이래 차별적인 특성을 증명하도록 요구받아 왔다. 현실에 종속될수록 가치를 잃어버리는 예술세계에서 기록매체로서의 특성은 의미 없다. 오히려 현실과 사진 속 공간의 관계가 흥미로운 미학적 주제가 됐다. 특히 독일 ‘뒤셀도르프 학파’가 주도한 내부 공간에 대한 관심은 현대의 사진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삼성미술관 리움이 개관 이래 사진전으론 처음 여는 ‘국제현대사진전-플래시 큐브(Flash Cube)’는 공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보여 준다. 현대사진이 건물의 내부 또는 실내를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는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도시공간엔 어떤 특성이 있는가를 직시한다.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뉜다. 첫째, 유동적인 내부 공간. 2003년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대표 작가인 칸디다 회퍼가 대표적이다. 콘서트홀·미술관 등 공적 공간들을 역동적으로 표현하는 게 그녀의 특징. 일상의 공간에 정물을 정교하게 배치한 뒤 사진으로 찍은 이윤진씨의 ‘정물연작’(2004~2006)도 흥미롭다.
오늘날 도시 풍경에 대한 예술적인 접근도 큰 축이다. 안드레아스 구르스키, 토머스 루프 등의 작품은 사진의 도상적·연출적 특성을 숙고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재구축하는 설치적 작품들.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 작가인 아르민 링커(이탈리아)는 수백만 가지 이미지를 재분류, 종이책으로 전시하는 실험을 한다. 공간을 찍은 사진이 다시 공간으로 침투하는 과정은 사진이란 매체의 본질을 되새김질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회는 네덜란드 출신 객원 큐레이터 헹크 슬라거에 의해 기획됐다. 네덜란드 위트레히트 미술대학원장인 그는 특히 리움이라는 비원근법적인 독특한 공간까지 전시 전략의 일부로 녹여냈다. ‘설치’된 사진의 안팎에서 공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배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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