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문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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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지만「카피」라고 불리는 광고문안만큼 말 한마디에 따라 그 효과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도 없다. 슬쩍 지나가는 말처럼 보여도 그 말에는 소비자들의 구매욕구 및 심리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자사의 판촉전략이 모두 함축돼 있고 실제로 이에 따라 각 제품의 성패가 결정되기도 한다.
최근 제일제당이 내놓은 동결건조제품인 즉석 북어국의 TV광고 중에『북어도 꽤 많이 들었죠?』라는 카피를 예로 보자. 북어국은 주로 아침 해장용 등으로 아주 제격인 음식이지만 인스턴트화 됐다고 해도 소비자들, 특히 주부들은『이제 편리하겠다』는 생각보다『아무러면 직접 끓인 것보다 나을라구』라는 생각을 하게 마련이다. 이 광고의「꽤 많이」라는 표현은 바로 이 때문이다.『우리가 만들기는 했지만 인스턴트제품인데 북어가 들어가 봐야 얼마나 들어갔겠습니까? 하지만 저희들로서는「꽤 많이」넣는다고 넣었습니다』라는 제조업체의 저자제격인 호소가 숨어있는 셈이다.
만약『북어를 아주 많이」넣었습니다』『진짜와 다름없습니다』식의 적극적인 표현이었다면『인스턴트 주제에 허풍떨고 있네』식의 거부감이 앞섰을 것이다.
『오렌지를 직접 갈아 마시는 느낌이에요』라는 경쟁회사의 주스광고로 타격을 입게된 해태음료가 이에 대응하기 위해 새로 내놓은 광고 중에『이것저것 첨가물을 섞지 않은 1백%오렌지 주스』라는 문구도 마찬가지다. 경쟁사는 마시는 동안 건건이를 느낄 수 있도록 차별화 한 자사 주스제품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갈아 마시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해태는 「이것저것」이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이를 역이용했다.
경쟁회사제품으로 돌아서던 소비자들이『아니 그럼 이 주스의 걸쭉한 느낌이 싸구려 첨가물 때문이었던가』하는 생각이 들도록 겨냥한 것이다(물론 불순첨가물이 포함된 것은 아님). 카피라이터의 말 한마디는 그야말로 천냥 빚을 오고가도록 하는 셈이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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