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락 증후군」과장보도 못마땅|박두혁(연세의료원홍보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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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10세 미만의 A, B, C라는 세 아이가 있다. A는 태어나서 경기 한번 하지 않고 지금까지 건강하게 자라온 아이고, B는 A보다 심약하고 어렸을 때 경기를 일으킨 경험이 있는 아이다. C는 자라는 동안 뇌염·뇌종양을 앓았거나 고열의 병을 앓은 경험이 있는 아이다. 이 세 아이가 전자오락게임을 하다 경련을 일으켰다고 가정한다면 A의 경우 전자 오락기가 그 원인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이 경우에도 정밀 검사를 거처 본디 건강상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판정될 때「게임기 증후군」같은 새로운 병명이 나타날 수 있고 연구의 대상이 될 것이다. B의 경우 본래 간질의 소질이 있는 아이로서 전자 오락기가「경련을 일으키는 원인」은 되었다고 하나 직접적으로「간질의 원인」이 되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C의 경우 더욱더 그러하다. 이것이 의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다.
최근 문제되고 있는 아이들은 거의 B의 경우며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던 강모군도 뇌파검사 중 광자극을 주었거나 뇌파에 아무 이상이 밝혀지지 않아 결국 B와 같은 아이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중한 영향력을 가진 신문·방송들이 미국·유럽공동체(EC)가 최근 문제삼고 있는 핫 이슈라 해서 경쟁적인 보도에만 치우친 감을 준 것은 참으로 유감스럽다. 전자오락게임을 오래 하게 되면 시력이 나빠지고 머리가 아프며, 때로는 관자놀이 부분이 붓기도 한다. 또 혼자 하는 게임이기 때문에 집단의식이 희박해진다는 문제점도 없지 않다. 전자오락게임을 너무 오래 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도 육체적·정신적으로 좋지 않다. 전자오락게임을 말려야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데 있는 것이다.
이것을 무슨 새로운 병이 생겨난 양국민들이 걱정하도록 만드는 것은 우리 언론이 고쳐야 할 점이라 말하고싶다. 유가공 제품 회사에 독극물 협박이 있었다는 보도에 대해서는 무엇 때문에 그 회사이름을 알려주지 않고「A사」또는「B사」로 표기하는지 독자들은 이해하기 힘들다. 유가공 제품에 독이 들어갔을 우려가 있다면 당연히 국민들에게 알려주어야 하지 않을까. 게임기 사건에 비해보면 독극물 투입 협박이 더 긴박한 문제가 아닌가하는 것이다. 언론은 더 이상「악어의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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