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회 공헌 출연이 산업은행 존립 이유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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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산업은행이 순이익의 1%를 출연해 사회 공헌 공익재단을 설립한다. 임직원이 반납한 6억원의 급여도 이 재단에 지원된다. 이 돈으로 저소득층을 지원하고, 도서관도 짓겠다는 것이다. 뜻있는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여론의 질타를 무마하기 위한 꼼수다.

산은은 방만한 경영과 수뢰·불법 대출 등 각종 비리로 여러 차례 지적받은 공기업이다. 편법으로 성과급을 더 줬다가 감사원에 적발됐고, 얼마 전 지점장이 수십억원의 금융 사고를 냈다. 지난해 산은 총재의 연봉은 7억4215만원, 직원 평균 연봉은 8758만원으로 공기업 가운데 최고였다. 해외유학을 간 직원은 월급은 물론 연 6만 달러의 체재비를 받는다고 한다. ‘신이 내린 직장’ 중에서도 단연 으뜸이다. 사회 공헌한다며 생색 내기에 앞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내부 단속부터 하는 게 일의 순서 아닌가.

조직을 줄여도 시원치 않은 마당에 늘리겠다는 발상도 문제다. 산은은 개발연대에 대규모 정책자금을 공급하기 위해 만들어진 국책은행이다. 하지만 민간 경제가 발전한 1990년대 이후 산은이 할 수 있는 일은 크게 줄었다. 아니 오히려 민간 분야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민간 금융회사 업무에 끼어들고 증권사를 자회사로 거느리는 등 설립 취지와 무관한 영역으로 몸집을 불렸다. 급기야 대기업 흉내를 내며 공익재단까지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 존립 사명을 다한 기관이 엉뚱한 명분으로 생명을 연장하려 하고 있다. 산은은 폐지되거나 민영화하는 것이 옳다.

정부는 여론에 밀려 국책은행 개편 방안을 만든다고 하더니 최근에는 그나마 감감 무소식이다. 국책은행장과 감사는 정부 관료가 낙하산으로 내려가 목돈을 쥘 수 있는 ‘따뜻한’ 자리다. 정부로선 이런 자리가 없어지는 게 달가울 리 없다. 이번에도 조직을 줄이고, 민영화하기보다 여론의 눈치를 살피며 어물쩍 넘어가고 싶을 것이다. 이런 정부와 공기업에 세금을 바치는 국민만 답답한 노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