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눈뜬장님|유준상<미술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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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지난가을 2개월 동안 세계도처를 서성거리다 돌아왔다. 눈으로 보는 예술인 미술을 공부하는 필자는 자주 눈을 새롭게 닦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리가 튼튼하지 못하면 우물안 개구리의 눈과 다를 게 없어진다. 제 아무리 눈을 부릅떠 봐야 수평선 너머나 지평선너머는 볼 수 없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데는 절대로 발의 도움이 불가결하다.
이처럼 눈과 발의 협동작업이 세계를 넓혔다고 해도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눈의 잠재력에 비하면 귀의 역할이라는 게 매우 무책임하고 불확실한 인식기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눈은 가려서 보지만 귀는 아무거나 듣는 매우 수동적인 장치여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번 여행에서 눈으로 보지 못한 게 하나 있다. 뉴욕의「N4 OMA」(근대미술관)에서 개최된「마티스」전이다. 전시 개막 3개월 전에 이미 예약 표가 매진되었다는 이 전시회는 이제까지의 어떤「마티스」전 보다도 가장 완벽한 전시구성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꼭 눈으로 확인하려고 체류를 이틀씩이나 연장해 뉴욕에 머물렀지만 허사였다.
아침 일찍부터 서두르면 한정된 예비 표를 구할 수 있다 기에 나가 보았지만 이것도 허사였다. 모포를 뒤집어쓴 철야의 극성파들이 미술관주변을 겹겹이 포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눈으로 보지 못하고 풍성한「마티스」만을 귀동냥한 채 뉴욕을 떠나와야만 했다.
어쨌든 놀라운 경험이었다. 미국문화의 사일런트 매저리티가 어떤 것인지를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시를 구성하는 문화기능도 대단한 것이지만 미술을 볼 줄 아는 미국사람이 그렇게 엄청난 것인지는 경험한바 없었기 때문이다. 미술관입장의 암표가 다섯 배에서 열 배까지 뛴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돈을 가지고도 암표를 못 구한 필자는 영락없는 우물 안 개구리와 다를 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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