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학술|"현실적인 변혁이론 만들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학계, 특히 사회과학 분야에서 젊은 학자·연구자들의 활동이 두드러 지는 것은 진보를 지향하는 영역에서다.
학계에선 제도권의 교육·연구기관이 객관성을 내세워 현실문제에서 유리된 채「학문을 위한 학문」에 빠져 버렸다는 반성에서 시작된「학술운동」이 젊은이들의 지향을 대변한다.
지난해 4월에 창립된 한국사회과학연구소(소장 정윤형·홍익대경제학과 교수)는 사회과학계 최대의 학술운동연구소다. 연구소의 조직은 이원적이다.
80여명의 소장교수들로 이뤄진 연구기획위원회는 중장기연구방향을 기획·조정하며 1백여 명의 석·박사 급으로 이뤄진 연구진은 경제·정치·사회연구실로 나뉘어 구체적인 연구를 행하고 있다.
실제연구를 담당하는 연구진의 인력이 20∼30대 젊은이들이며 그 연구를 위한 문제의식이 사회의 변혁·진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대표적인「젊은 연구소」로 꼽힌다.
기획위원회 교수들과 연구 국 석·박사들은 각 연구실의 세미나, 토론, 매월 열리는 월례토론회 등으로 결합돼 있고 연구성과는 정기간행물로 발표된다.
당면한 현실을 진보의 관점에서 분석·정리하는『월간 흐름』,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분석과 이론적 쟁점을 싣는 계간『동향과 전망』이 그것이다.
『월간흐름』은 1천 권, 국내 유 일의 종합사회과학 계간지『동향과 전망』은 3천 권 정도가 회원·서점들에 배포되지만 진보학계의 흐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다음으로 각 연구실이 장기프로젝트로 작업한 결과는 단행본으로 출간되는데 현재『재벌연구』『한국노동운동사』『직능자격제도 연구』등 7개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이 연구소가 87년 이전까지 4∼5년간의 작업결과를 단행본으로 출간한『노동조합 조직연구』등 15권의 발간물은 특히 구체적 조사에 입각한 실증적인 연구로 높은 평판을 얻고 있다. 연구소의 이념적 지향은 사회변혁 적이고 급진적 성격을 띠지만 실제 연구는 철저하게 실증주의를 택하고 있다.
연구소 구성원들의 이념적 입장은 대체로 국가를 계급구조의 반영으로 해석한다거나 경제에서는 자본-임 노동 관계를 핵심으로 본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틀이 우세하지만 이외에도 포스트 마르크스주의 혹은 우파의 전통적 분석 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폭을 갖고 있다.
정태인 연구기획실장 겸 연구국장은 이와 관련,『진보적 학술운동이 과거, 그리고 현재에도 추상적 이론에 현실을 짜 맞추어 해석하는 경향이 크다는 반성의 결과 우리 연구소는「현실에서 이론으로」라는 구호로서 현실과의 밀착, 실사구시의 자세를 실천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연구소는 그러나 고민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이 분석 틀로서의 유효성이 남아 있다 해도 변혁의 전망으로서는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진보학계의 전반적인 고민이 그것이다.
정 소장은 그럼에도『연구소는 그 동안 객관적 사실 축적에 중점을 두어 왔지만 이제는 이를 토대로 사실에서 출발하는 이론을 논리적으로 정립하는 단계에 와 있다』면서『진보학계의분위기가 옛날보다 침체한 것은 사실이지만 실현 가능한 변혁이론 창출을 위한 우리의 연구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