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수지는 적자인데 환율은 왜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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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환율은 미쳤다."

삼성경제연구소 홍순영 상무의 말이다. 현재의 원화 강세 현상은 한국의 경제적 여건을 감안할 때 비정상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은 올 들어 4월 말까지 33억6000만 달러 경상수지 적자를 냈다. 들어온 달러보다 나간 달러가 많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달러를 많이 사야 하니 시장원리에 따라 환율이 올라야 한다. 그런데 상황은 반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달 발표한 각국 환율 실태 보고서에서 그 나라 물가를 고려할 때 한국 원화는 26% 고평가돼 있다고 밝혔다. 반면 경쟁국인 일본 엔화는 31%, 중국 위안화는 6.8%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 전문가들은 ▶일본의 초저금리▶초호황인 조선 산업▶활황 증시를 '환율 하락의 주범'으로 지적했다. 현재 일본 정부의 정책금리는 0.5%. 한국은행의 콜금리 목표치(4.5%)와 4%포인트 차이가 난다. 이 때문에 한국 금융회사들이 일본에서 돈을 꿔다 한국에 예치하는 '엔 캐리 트레이드'를 하고 있다. 국내 은행에 예치하려면 일본에서 들여온 엔화를 원화로 바꿔야 한다. 그러다 보니 원화를 사려는 수요가 많아 원화 강세-엔화 약세가 이어진다.

조선업의 호황은 '조선업체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바꾸는 과정에서 원화 강세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부르고 있다. 이로 인해 금융회사와 투자자들이 원화를 사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에선 이런 원화 사재기가 투기 단계에 이르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증시 활황으로 해외 단기성 투자자금이 몰려드는 것도 원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다.

상당수 중소기업이 본업을 제쳐놓고 환 투기에 가세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원래 수출 중소기업들은 수출 대금으로 받는 달러.엔 가치가 떨어질 때에 대비해 '보험' 성격으로 환율 관련 금융 상품에 가입했다. 그러다 최근 원화 강세로 재미를 보고는 이젠 '보험'성이 아닌 '투자' 차원에서 환 투기 상품에 들고 있다는 것이다. 환 투기 상품이 늘면 늘수록 원화 수요가 많아져 원화는 더욱 강세를 보이게 된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연구위원은 "무엇보다 엔 캐리 트레이드가 사라져야 하고, 일본이 금리를 올려야 한다"며 "그러나 일본이 금리를 아주 천천히 인상할 움직임이어서 당분간 원화는 고공행진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엔 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금리가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고금리 국가에서 예금을 하거나 다른 자산에 투자하는 것. 일본의 금리와 투자국 금리 차이만큼의 이익을 낼 수 있다. 일본의 장기 불황이 시작된 1990년대 초반 일본 정부가 금리 0% 정책을 펴면서 엔 캐리 트레이드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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