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빛바랜 명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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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 콩쿠르는 1990년대 이후 잃어버린 옛 명성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차이콥스키 콩쿠르가 처음 열린 것은 1958년. 당시 미국 출신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1위를 차지해 화제가 됐다. 4년만에 한번씩 열리는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당초 예정대로라면 지난해 6월에 열려야 했다. 하지만 유서 깊은 콩쿠르 장소인 모스크바 차이콥스키 음악원 볼쇼이홀이 리노베이션 때문에 문을 닫아 1년 후로 미뤄진 것이다(물론 결국 리노베이션도 미뤄졌다). 다음 대회는 4년 후인 2011년에 열릴 예정이다.

그동안 차이콥스키 콩쿠르는 ‘클래식 음악의 올림픽’이라고 불렸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성악 등 주요 부문을 모두 커버하고 있는데다 올림픽처럼 4년에 한번씩 열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동안 공교롭게도 역시 4년마다 한번씩 열리는 월드컵 축구와 맞물려 행사진행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차이콥스키 음악원 리노베이션 때문에 한 해씩 순연된 것이 차라리 잘 되었다는 얘기도 나온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 입상만 하면 국제적인 연주자로 두각을 나타내는 시절이 있었다. 냉전 시절 크레믈린 당국에서는 러시아 출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실력있는 외국 연주자들에게 메달을 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피아노 부문만 보더라도 1회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반 클라이번은 미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일본 출신의 미츠코 우치다는 1966년 피아노 부문 공동 2위, 74년 정명훈씨는 피아노 부문 공동 2위를 차지했다. 뉴욕필 악장 글렌 딕테로는 70년 대회에서 5위에 입상했다. 미국 소프라노 드보라 보이트는 90년 대회에서 우승했다.

이밖에 러시아 출신으로는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미하일 플레트노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보리스 베레좁스키(이상 피아노), 기돈 크레머, 빅토리아 뮬로바(이상 바이올린) 등이 입상했다.

차이콥스키의 명성이 심각하게 실추된 것은 1990년 9회때부터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와중에 열린 이 대회에서 참가자들은 숙식 문제 때문에 주최측에 많은 불만을 드러냈다. 그동안 나름대로 공정하게 진행되어 온 심사도 편파 시비에 휘말렸다. 러시아인, 특히 차이콥스키 음악원 출신들이 유리하도록 심사를 한다는 비난도 일었다. 러시아 출신 심사위원들이 동료 교수의 제자들에게 높은 점수를 주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최근에는 야마하 피아노, 도요타 자동차 등 일본 기업이 콩쿠르의 메인 스폰서로 나서자 일본 출신 연주자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나 2002년 대회에서는 피아노 부문, 1990년과 올해 대회에서는 바이올린 부문, 1998년 여자 성악 부문에서 일본 출신이 각각 1위에 입상했다.

러시아가 최근 차이콥스키 콩쿠르의 명성을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는지는 지난 4월 타계한 첼리스트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에게 제13회 콩쿠르의 대회장을 맡긴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음악계에서는 실제로 브뤼셀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 입상하는 것을 더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다. 차이콥스키는 한때 세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피아니스트 임동혁(23)은 이번 대회에서 1위 없는 공동 4위에 입상했다. 2001년 롱 티보 콩쿠르 우승, 2003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3위 입상, 2005년 쇼팽 콩쿠르 공동 3위 입상에 이어 처음으로 3위권 바깥으로 밀려났다.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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