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개방「무조건 항복 자세」실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신중성이 결여된 박수길 주 제네바대사의 최근 귀국회견에 대해 할 말이 있다. 박 대사의 회견핵심은 쌀을 지키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으나 정세분석결과 세 불리하므로 조만간 항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대 결투를 앞두고 조기 항복부터 상정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첫째, 한국은 결국 쌀을 포기할 것으로 인식하여 우리의 협상 력이 심히 약화된다는 점이다. 최후에 가서 입장변경을 시사하면서 이해관계국과 어떻게 견고한 공동전선을 펴 나갈 수 있겠는가. 우리가 일본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과 같이 일본 등도 우리를 신뢰하지 못할 것이다. 정부는 과연 쌀을 지킬 의지가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둘째, 현지 총사령관의 정세분석이 너무 현장 중심적이라는 점이다. 2월말 타결전망은 세계정세를 제네바에 너무 중심을 두고 바라다보는 전망 같다. 한마디로 미국중심 제네바의 범 다자 GATT시대는 기울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늘날 세계정세는 GATT와 같은 범 다 자 체제로 나가야 하는지, 유럽통합이나 NAFTA등과 같이 지역 다 자 체제(블록)로 나가야 하는지 확실한 방향을 설정치 못하고 있다. 대체적인 정세는 유럽은 지역 다자 체제가 중심이고 미국·일본은 반반인 상황이다. UR가 조기에 타결되려면 이 삼자 중 하나가 지역 다자 체제에의 미련을 과감히 버리고 범 다자 체제의 복원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결단이 있어야 하나 현재로선 희망이 없다. 따라서 2월말 타결전망은 50%가 채 못된다.
셋째, 협상의 목표가 너무 중단기적 국익에 치우쳐 있다는 점이다. 2월말 최종 협정 문에 예외 없는 관세화 방안이 들어가더라도 정치적 결단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시사한 것이 단적인 예다. UR에서 한국이 쌀을 지키지 못하면 백기를 드는 것과도 같다. 둔켈 초안을 냉정히 평가해 볼 경우 거의 모든 분야가 미국의 입장이주로 반영되어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가 식량안보마저도 내어 주면서 얻게 되는 것은 지역 다자 체제의 지연 내지 약화, 그리고 반덤핑 조치 및 긴급 수입제한 조치 등의 남용방지에 따른 수출증대효과다. 그런데 UR가 타결돼도 미국 등 기존 선진국 경제가 급속히 호전되기가 곤란하므로 세계무역의 불균형 문제는 계속된다. 이런 경우 미국 등은 지역 다자 체제에 비중을 둘 것이다.
반면 쌀은 개방되자 마자 통상 문제를 계속 일으키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쌀 수입량이 증가할 경우 정치적 요인 등을 고려하여 쌀 수입을 막거나 풀거나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쌀은 관세화의 수용으로 통상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통상마찰의 출발점인 것이다. 이는 쇠고기문제를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장기적으로 기초식량기반이 붕괴되어 가는 동북아에는 식량확보 문제로 불안이 조성될 것이다. 동북아에는 15억의 대인구가 살고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끌고 나갈 것인가. 따라서 쌀 문제는 결코 포기를 상정하지 말고 이해관계국과 적극 협력하여 최후까지 국경보호의 고리를 만들어야 한다.
김형재<경기도 화성군 반월면 대야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