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력증에 빠진 사격인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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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계유년 새해를 맞이한 사격인들의 얼굴에 희망과 활력대신 무기력과 우울한 빛이 감돌고 있다.
사격은 지난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를 따내 일약 「효자종목」으로 떠오르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러나 영광도 순간적. 대한사격연맹(회장 장진호)의 잇따른 식언과 무원칙한 행정으로 선수·지도자들은 의욕을 잃고 과녁을 겨누는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
특히 연맹이 지난 연말 폭로된 표적지 조작에서 보여준 태도는 기록경기인 사격의 신뢰도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상무 이철근 코치가 지난해 7월 라이플 대회 등에서 소속팀 선수의 표적지를 바꿔치기 한 것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말로만 떠돌던 기록조작의 비리가 실제로 드러난 일대 「사건」이었다.
그러나 연맹은 5인소위원회 (위원장 서강욱)를 구성해 조사에 착수, 2주일만에 「의혹은 있지만 증거가 없다」는 아리송한 결과를 내놓아 사격계 내부의 불신을 증폭시켰을 뿐이다.
이에 김철훈 이동표적 분과위원장이 지난해 12월31일 이사회에서 관련자의 녹음 등 증거를 추가로 제시하자 「좋은게 좋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한다」 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한편 장기하 진로그룹 및 사격연맹 부회장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감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지난해 8월 17일 기자회견에서 『회장사인 진로그룹을 필두로 실업팀 창단을 적극유도, 사격 발전의 기폭제로 삼겠다』고 밝혀 사격계를 들뜨게 만들었었다. 그러나 진로그룹을 포함, 어느 회사도 코칭 스태프 선임은 물론 창단과 관련한 어떤 가시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은 채 해를 넘겨 이 약속은 기억속에서 조차 희미해졌다. 진로는 91년에도 창단설만 무성히 꺼냈다가 백지화한 전력이 있어 이솝우화에 나오는 「늑대소년」별명이 불었을 정도.
이밖에 태릉사격장의 첨단전자 감응식 표적지 및 채점 시스템 설치 약속도 자금 문제의 벽에 부닥쳐 사실상 백지화 됐고 연맹과 푸른 동산의 안이한 대처로 선수들의 체력 단련장으로 사용되던 태릉사격장 일부(1만3천여평)를 문화부에 내주고 말았다.
이 때문에 오는 5월 서울 월드컵 국제사격대회를 앞두고 있는 사격계는 대표선수를 포함한 선수·지도자가 모두 심한 의욕 상실증에 걸려 올림픽의 영광이 한때의 영광으로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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