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자에게 드리는 고언/이수근 정치부차장(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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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기자는 김영삼대통령당선자에게 축하의 인사보다는 고언을 먼저 드리고 싶다.
명실상부한 문민정부의 탄생이 확고한 관행과 전통으로 확립되기 위해선 건너야할 험한 산과 강이 김 당선자 앞에 중첩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 당선자는 당선자를 아는 지인이건 아니건 간에 많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드는 장처를 가지고 있다.
당선자의 측근이건 일반시민이건간에 다수의 사람들은 김 당선자가 공개석상에 서기만 하면 조금씩은 모두 조마조마한 전율감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은 저 양반이 또 무슨 실수를 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 때문이다.
사람을 푸근하게 하면서도 조마조마하게 만드는 김 당선자의 양면성은 국정최고책임자가 아닌 정치인일 때는 애교정도로 넘길 수 있는 사안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김 당선자의 한마디가 국정의 구석구석에 영향을 직접 끼치게되는 당선이후부터는 문제가 1백80도로 달라짐을 김 당선자가 명심해주었으면 한다.
아무리 민주체제라 해도 국가원수의 말은 천금,만금의 무게를 갖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무심코 말하는 「아」,「어」 한마디에도 참모들은 민감하게 해석해 행동하며 일선 행정기관까지 내려가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한 바다.
이런 측면에서 볼때 당선자의 19일 오전 당선기자회견은 많은 국민의 우려를 낳았음을 전해주고 싶다.
김 당선자는 이날 부산지역 기관장모임에 대한 질의답변에서 도청부분의 엄정한 사실규명만 촉구했다. 물론 김 당선자는 회견문에서 「기관장모임」을 강하게 개탄했음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들은 답변에서 그 부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도청부분을 언급해주길 기대했으나 그렇지않아 적이 실망했다. 국민들은 대통령 당선자의 실수를 과거처럼 「애교성 실수」쯤으로 더이상 보아주지 않는다.
또 현실적으로도 그후 진행된 검찰수사의 편향성 논란이 거세게 일게된 배경도 당선자의 말에 크게 영향을 받았음이 방증됐다.
국가원수의 말은 신중하고 사려깊어야 한다는 점을 거듭 고언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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