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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연금 개혁 어디로 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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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선거는 국민 입맛에 맞는 정책을 누가 더 많이 내는가 하는 경쟁이 돼 버렸다. 그래서 사회복지는 선거 공약으로 제격이다. 이에 따라 소위 ‘사회복지의 정치 종속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선거에서 유권자에게 사탕발림의 도구로 선심성 사회복지정책은 남발하면서 꼭 필요한 사회복지나 개선은 외면해 버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선거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국민연금 개혁이다. 국민연금 개혁안은 오랜 기간 수많은 논의와 논쟁을 통해 학계와 전문가, 그리고 정치권까지 아우르는 타협안을 만들어 냈다. 그런데 정작 국회에서 선거에 도움이 안 될지 모른다는 이유로, 그리고 내 앞가림하기도 바쁘다는 핑계로 구석에 처박혀 버림받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국민연금이 내 것도 아니고 남의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때문에 멀리 팽개쳐 버리지는 못해도 곁에 두고 고민하는 것은 질색인, 말 그대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정도로 치부하는 것 같다.

 물론 국회에서만 그러는 게 아니다. 얼마 전 사학연금으로 탈출한 국책연구기관의 국민 기만적 태도도 있다. 그동안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을 위한 개혁을 주장하던 대표적 기관이 한국개발연구원(KDI)이고, 선진국 공적 연금 재정위기를 누구보다 잘 연구한 기관이 한국학중앙연구원이다. 이러한 기관들이 사학연금으로 옮기면 자신들은 연금 수혜가 높아져 당장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결국은 그로 인해 미래 사학연금의 재정은 더욱 악화될 것이라는 점을 뻔히 알고 있다. 당장의 이익을 좇아 국민적 고통 분담에 동참하기는커녕 오히려 공적 연금의 하나인 사학연금의 재정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한 도덕적 해이다. 정치권은 정치권대로, 전문기관은 기관대로 각자 살 길 찾기에 급급해 국민연금을 내팽개치는 것 같아 허탈하기 짝이 없다.

 국민연금 개혁은 모든 국민의 노후보장뿐 아니라 사망이나 장애로 인해 빈곤으로 추락하는 것을 막는 가장 중요한 사회안전망을 제대로 작동케 하자는 것이다. 우리 세대가 만든 국민연금제도를 다음 세대, 나아가 우리 후손들이 잘 이어갈 수 있도록 지금 우리 세대 스스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국민연금 개혁의 기회를 놓치면 우리는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 한 세대 이상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국민연금의 씨앗을 뿌리고는 방치해 그 부담을 후손에 떠넘긴 세대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결국 우리 후손들은 우리를 역사상 가장 이기적인 세대, 가장 못된 세대, 그리고 가장 못난 세대로 기억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 우리를 떳떳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후보자가 누구인지 눈여겨 봐야 한다. 그리고 이를 요구하고 받아들이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국민연금 개혁에 솔직하게 나서서 입장을 밝히고 개혁에 노력하는 후보가 우리 국민을 기만하지 않는 가장 진실한 후보라는 사실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정치에서 볼 수 있는 시야는 다음 선거까지라고 한다. 그런데 국민연금에서의 시야는 다음 세대까지다. 아니 다음 세대를 넘어 자자손손 영향을 미치는 게 국민연금이다. 멀리 볼 줄 아는 지도자가 사회를 제대로 이끈다. 누가 멀리 보는 지도자인지 국민이 확인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김진수 연세대 교수·사회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