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무상(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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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배우고 제 때에 익히니 그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시작되는 『논어』의 첫장 학이편은 곧장 우정예찬으로 이어진다.
「친구가 먼곳에서 찾아오니 그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공자가 인생의 즐거움 가운데서 학습 다음으로 꼽은 이 우정이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윤리학』에서 친구를 세종류로 분류했다. 첫째는 쾌락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둘째는 유용성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셋째는 덕을 목적으로 만나는 친구다. 그에 따르면 어떤 이익을 위해서는 악한 사람들에게도 우정이 존재한다. 그뿐 아니라 악한 사람과 선한 사람,또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사람끼리의 우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선한 사람들의 선한 우정이 아니면 진정한 우정이라고 할 수 없다.
칸트도 우정을 세종류로 나누었다. 필요의 우정,취미의 우정,심정의 우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우정의 최고가치를 덕에 둔데 비해 칸트는 그것을 심정에 두고 있다. 심정은 인간의 가장 순수한 마음,진정이다. 칸트는 그 진정없이 우정은 존재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 정치풍토에서 자주 거론되는 우정은 도대체 어떤 것이기에 그렇게도 말이 많은가. 한때는 육사동기의 「40년 우정」이 화제에 올랐던 적이 있었다. 바로 노태우대통령과 전두환 전 대통령,그리고 정호용의원과 김복동의원이 그 주인공들. 모두 육사11기출신의 죽마고우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모두 마음속에 비수를 품고 뿔뿔이 흩어져 있다.
그 「40년 우정」의 무상함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번에는 「30년 우정」논쟁이 대선 막바지의 쟁점이 되고 있다. 김영삼후보의 「색깔론」과 김대중후보의 「변절론」이 바로 그것이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으로 한 시대 야당을 이끌어온 숙명의 동반자며 라이벌이기도 한 그들에게 진정한 우정이 존재했을까. 아마도 정치를 하지 않았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정치는 인격을 파괴한다」는 비스마르크의 말을 믿는다면 그들의 우정은 진정한 우정이 아닌 「필요의 우정」에 불과했을 것이다. 우정의 무상함이여­.<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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