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일본인 속마음, 12개 키워드면 다 풀려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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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800만

일본의 신도(神道)에는 무려 800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너무 많다 보니 발길에 채이는 돌멩이도 신이 될 수 있다. 만물에 신성이 깃들어 있다는 종교관이다. 소박한 범신론으로 치부될 믿음이지만, 일본인들은 이 신앙 속에서 사물에 대한 존중을 배운다. 물건 만들기에 대한 숭배다. '물건 숭상주의'가 제조업 강국을 만든 힘이다. 대대로 가업을 이어 창업 100년을 넘은 기업.점포가 1만5000여개에 이르는 것도 이런 전통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한편, 800만이라는 신의 숫자는 사실상 초월적 존재의 부재를 말한다. 전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믿는 종교가 있었을 정도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천국과 지상으로 격리된 것이 아니라 이 땅의 현세와 얽혀 있다. 유일신 같은 초월적 존재는 거부하지만 인간에게 신과 같은 초월적 자격을 부여하는 신화화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

# 44억5936만 장

일본에서 2004년에 배달된 연하장의 개수다. 일본 인구는 1억2000여만 명. 1인당 평균 37장을 보낸 셈이다. 연말에 맞춰 무려 44억 통의 연하장을 보내는, 아니 보내야만 하는 민족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연하장 수가 이렇게 많은 것은 받으면 답해야 하는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한 번 봤을 뿐인데도 연하장을 보내는 경우가 있고, 여러 통을 보내다 보니 자기가 연하장을 받은 상대에게 답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 헷갈려서 고민하기도 한다. 선물을 받으면 곧바로 비슷한 가격대의 물건으로 답례를 해야 한다. 이런 문화는 '남에게 폐를 안 끼치는 마음'에서 나온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는 사람이 하루에 1만 명이 넘는 시대다. 아직도 일본을 임진왜란 때의 '왜적'이나 독도를 넘보는 '적국'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안 된다. 이 책은 12개의 키워드로 일본인의 의식 구조를 해부했다. 도쿄 특파원 출신인 저자는 이 '가깝고도 먼 이웃'의 문을 여는 12개의 열쇠를 준 셈이다. 일본을 모를 수도 없고, 알려고 들어갔다가 그 안에 갇혀서도 곤란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본의 속내를 드나든 데 도움이 된다.

배노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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