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단발머리 총잡이 바르셀로나 첫「금」행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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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환호와 눈물, 그리고 가없는 기쁨.
바르셀로나의 신데렐라 여갑순(18·서울체고3)은 금메달이 확정되는 순간 배병기 감독을 얼싸안고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단발머리 여고생 총잡이 여갑순은 올림픽 시작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세계적으로 스폿라이트를 받았다.
5대양 6대주 1만4천여명의 젊은이들이 기량을 겨룬 지구촌의 축제에서 2백57개의 금메달 중 1호를 차지했기 때문.
대회 이틀째인 7월26일 오후(한국시간) 몰렛델바예스 올림픽 사격장.
실바람이 부는 가운데 여자 공기소총 결선에 진출한 여갑순은 국내에서 애용해온 빨간색 모자를 쓰고 사대에 섰다.
첫발에서 다소 흔들렸으나 두번째 발부터 특유의 배짱으로 평상심을 되찾은 뒤 세번째에는 10.6점을 얻어 세계적인 미녀 총잡이 레체바(불가리아)를 제치고 선두로 뛰쳐나갔다.
자신감을 얻은 여갑순은 페이스를 줄곧 지키며 결선합계 4백98.2점으로 경기를 마쳐, 레체바를 2.9점 앞서며 한국사격사상 올림픽 첫금메달을 거머쥐었다. AP, AFP등 세계 유수의 통신이 동양의 무명선수가 금메달을 따낸 사실을 흥분하며 긴급 타전할 정도로 여갑순의 선전은 기대 밖이었다.
당초 이은주(한체대)와 진순영(한국통신)이 여자공기소총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한 뒤 국내선발전에서 여갑순이 진을 물리치고 턱걸이로 올림픽무대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택시운전을 하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 딸의 선전을 고대하던 아버지 여운평(47)씨는 동네 주민들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췄다.
여갑순은 단 한개의 금메달로 매월 60만원의 연금과 장진호 대한사격연맹회장의 포상금 5천만원을 받아 여고생으로서는 큰돈을 만지게 됐다.
또 계속되는 환영식에 참가하느라 두달동안 훈련을 중단, 평소 54㎏의 몸무게가 4㎏이나 증가하는 등 호된 후유증에 시달렸다.
그러나 한체대로 진로를 확정한 여갑순은 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대표로 뽑혀 다시 태릉사격장에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고 있다.
아시안게임은 물론 96아틀랜타 하늘에 또 다시 태극기를 올리기 위해서.<김상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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