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쪽, 9쪽, 37쪽 … 헷갈리는 대운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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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건설교통부가 19일 공개한 9쪽짜리 '대운하 보고서'는 20일 세 가지 새로운 의혹을 낳았다. 이용섭 장관이 해명에 나섰지만 한나라당 이명박 경선 후보 측은 "9쪽짜리 보고서도 조작 의혹이 있다"고 받아쳤다.

①이용섭 장관 말 바꾼 이유는=이 장관은 18일 국회에 출석해 "9쪽짜리는 (37쪽짜리와)내용과 글자체부터 많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또 그는 "공식 문서에선 (대통령을 가리킬 때 'VIP' 대신)'대통령님'이라고 쓴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장관이 받은 것이라며 건교부가 공개한 9쪽짜리 보고서는 37쪽짜리의 주요 부분과 형식과 내용에서 거의 같았다. 'VIP'라는 용어도 적시돼 있다.

문제가 되자 이 장관은 "국회 증언 때는 실무자가 '글자체까지 다르다'고 해 그렇게 말했다"고 해명했다. 또 "공식 문서에서 VIP라고 안 쓴다는 일반적 설명이었지, 보고서에서 안 썼다고 한 적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이재창 의원은 "이 장관이 말을 바꿔 진실을 가리려 한다"며 "책임을 묻겠다"고 공격했다.

"중앙선관위의 선거법 위반 조사가 시작되자 이 장관이 빠져나가는 데 집착한 나머지 보고서와 다른 말을 한 것 아닌가" 하는 분석이 정치권 일각에서 나왔다.

②9쪽 보고서 급조됐나=한나라당 박승환 의원은 "조직적인 '이명박 죽이기'의 증거인 37쪽 보고서의 출처를 감추려고 건교부가 이와 내용이 비슷한 9쪽짜리를 급조한 의혹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의 근거는 건교부 실무자가 18일 국회에 출석해 한 발언이다. 당시 그는 "37쪽짜리에 있는 '최신 동향' 같은 부분이 내가 작성한 9쪽 보고서와 전혀 다르다"고 말했다.

③누가 지시했나=37쪽이든 9쪽짜리든 두 보고서에 공히 "VIP께서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만찬(2월 22일)에서 '운하가 우리 현실에 맞느냐'고 말씀"이란 내용이 있다. 문맥상 보고서 작성의 계기로 해석될 수 있다.

이를 근거로 이 후보 측 박희태 선대책위원장은 "이번 공작의 정점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다고 본다"고 주장하고 있다. 노 대통령의 관심 표명 때문에 청와대가 보고서 작성을 지시했으리란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보고서 작성을 청와대가 지시한 일은 결단코 없다"고 '청와대 지시설'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용섭 장관은 이날 회견에서 9쪽짜리 보고서만 봤고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다는 얘기만 했지,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지시한 주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어떤 경우든 보고서 작성에 관련된 공무원은 선거중립 의무 위반으로 선관위 조사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캠프에선 "최소한 청와대의 관심 표명이 있고, 이어 건교부 장관의 지시가 있어야 하급기관인 수자원공사가 움직이는 것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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