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선민기자의가정만세] 입양, 피보다 진한 '가족의 탄생' 아닐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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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만난 중앙일보 패밀리 리포터에게서 들은 얘기다. 이분이 평소 가깝게 지내는 50대 중반 부부가 올 초 초등 1년생 남자아이를 입양했단다. 부인이 미혼모 지원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수년간 귀여워하던 아이였다. 아이 엄마가 "사정이 생겼으니 석 달만 맡아달라"고 해 집으로 데려온 게 발단이었다.

딸 넷을 둔 이 부부는 소위 자식 다 키우고 부부끼리 노후를 즐기는 일만 남은 처지였다. 즉 아이를 새삼스레 다시 키울 이유는 전혀 없었다. 이들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흔들어 놓은 건 석 달간의 동거가 끝난 후 아이가 한 말이었다. "하느님이 날 이런 집에서 태어나게 하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입양 후 삶의 질이 달라진 건 아이만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아들 데리고 목욕탕 다니는 잔재미에 폭 빠졌단다. 늦둥이 아들 보느라 귀가도 서두를 정도다. 할머니도 손자의 재롱에 외로움을 잊었다. 입양된 아이보다 오히려 더 큰 행복을 가족들이 누리고 있다는 얘기였다.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으니 가능한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혹은 부모 나이가 너무 들었는데 어린애를 입양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 아니냐고 비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래도 저지르지는 못하고 이러쿵저러쿵하는 제3자적 시각에 가까워 보인다.

내 주변에도 버려진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는 현실에 가슴 아파하긴 하나, 친자식들과 융화되지 못할까 등의 이런저런 우려로 입양하는 걸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그런데 입양을 또 다른 형태의 (가족) 관계 넓히기라고 크게 해석해 보면 출구가 없는 것도 아니다. 동화작가 중 아이 한 명과 7년째 결연을 맺어 후원하는 분을 알고 있다. 처음 만났을 때 다섯 살 꼬마였던 아이는 지금 어엿한 초등 고학년생이 됐다. 여름과 겨울, 일 년에 두 차례 지방 보육원에서 서울로 일주일가량 '아줌마'를 만나러 온다.

아이에게 가족과의 일상적인 삶을 잠시나마 맛보게 해주고 싶다는 게 아줌마의 진심이다. 개인 사정상 해외 체류가 잦지만, 아이와의 약속은 어길 수가 없단다. "친부모로부터 한 번 버림받은 아이에게 또 다시 어른의 무책임함을 겪게 할 수 없어서"다. 그런 그에게 "왜 7년이 흐르는 동안 아이를 호적에 올리지 않았느냐"고 묻는 건 무의미한 일이다.

입양된 아이와 부모의 행복한 모습을 담은 포토에세이 '우리가 너를 선택한 이유'를 보면 "부모의 실수로 태어난 아이는 있어도 신의 계획 밖에서 태어난 아이는 없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을 내 멋대로 확대해석하자면, 신은 이런 식의 관계 넓히기까지 이미 계획하셨다고 봐야 한다. 피가 꼭 섞여야, 호적에 꼭 올라야 진짜 가족일까. 이미 서서히 느껴지는 사회와 인식의 변화는 '아니다'라고 고개를 젓고 있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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