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 (7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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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림=김태헌

내가 집으로 들어서자 소식을 들은 식구들이 밥을 먹다 말고 모두 현관으로 몰려나왔다.

"와우, 이렇게 이쁜 고양이는 처음이야. 공주 같아. 얼음 공주. 누나 이 고양이 이름 뭐라고 지을 거야? 공주라고 짓자."

"아니야. 내가 오는 동안 생각했는데 이 고양이 이름은 밀키야. 원래는 파랑새라고 지으려고 했는데, 마음을 바꿨어. 너무 하얗잖아. 라떼하고 항렬도 같이 하려면 밀키가 좋아."

흰 고양이 밀키는 내 품을 벗어나자마자 집안을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소파 밑에도 들어가고 식탁 밑으로도 들어가고, 우리 식구들이 밀키를 잡으려고 하자 제제의 방으로 들어가 깊은 서랍 속에 빠져버렸다. 식구들이 밀키를 잡으러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동안 저녁 식사는 먹는 둥 마는 둥 되어버렸다.

"쟤 생긴 건 공주 같은데 왜 이렇게 천방지축이야?"

막딸이 아줌마가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아직 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곰곰이 흰 고양이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 고양이 아무래도 날 닮은 거 같지 않니? 가만있을 때는 차갑고 도도한 것같이 보이는데…. 움직이면 대책이 없어. 지난 주말에 초등학교 동창회 갔더니 35년 전에 내 짝이었던 아저씨가 그러는 거 있지. 야, 어떻게 너 같은 말괄량이가 소설을 쓸 수가 있냐…. 그래서 맨 처음에는 신문에서 내 이름 보고도 안 믿었대. 난 어릴 때 꽤 책만 읽는 조숙한 아이라고 내 자신을 기억하는데…. 기가 막혀."

둥빈이 다시 식탁으로 돌아가 밥을 먹으며 느긋하게 끼어들었다.

"엄마는 움직이면 대책이 없는 것은 맞는데, 가만있을 때는 차갑고 도도한 게 아니라, 무서워…. 언제 난데없이, 소리를 지를까 싶어서…. 둥빈아! 빨래 바구니에 넣으라고 했지? 둥빈아! 먹은 그릇을 부엌에 가져다 놓으라고 몇 번을 말해야 하니, 응? 둥빈아! 둥빈아!"

우리 세 형제는 모두 배를 잡고 웃었다. 둥빈이 엄마의 말투를 너무 잘 흉내 내고 있어서였다. 막딸이 아줌마까지 고개를 숙이고 킥킥 웃었다. 엄마는 약간 기분이 나빠진 것 같았다.

"엄마가 언제 그랬니? 그리고 그런 건 기본인데 너희가 안 하니까 그렇지?"

엄마는 우리의 지적을 의식한 듯, 아주 낮고 조용한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제제가 끼어들었다.

"나도 어제 일기장 냈더니 선생님이 나보고 물으셨어. 엄마가 집에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시니? …내가 일기장에다 그렇게 썼거든. 우리 엄마는 내 귀가 먹은 줄 아나보다. 한 번 말할 걸 열 번씩 말하고 조용히 말해도 될 걸 소리를 지른다."

엄마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제제를 쳐다봤다.

"너… 정말 일기에다 그런 거 다 썼어? 너희 선생님 엄마 누군지 다 아는데?"

제제가 당연하다는 듯 약간 오만한 표정으로 "어" 하고 대꾸했다. 엄마는 식탁에 젓가락을 놓더니 제제에게 다시 말했다.

"또 뭐 썼는데?"

"엄마 전에 술 먹고 들어와서 춤춘 거…."

엄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야아, 어떻게 그런 걸 써? 친구들하고 다퉜다가 다시 화해한 이야기를 쓰든가, 읽은 책 이야기라든가. 날씨…. 일기는 뭐 그런 걸 쓰는 거지? 어디 일기장 좀 가져와 봐."

우리 셋은 일제히 엄마를 쳐다보았다. 엄마는 그제야 자신이 매우 오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변명을 했다.

"아니, 그냥 맞춤법도 보고…. 띄어쓰기도 보고."

제제가 입을 삐죽였다.

"일기는 자기만 보는 거야. 선생님한테는 혼나니까 하는 수 없이 보여주는 거지. 그래서 선생님이 우리한테 소리지른 이야기는 안 써."

"제제가 이제 인생을 아네." 둥빈이 킥킥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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