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3당공약의 허실: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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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뒷감당 생각않고 “깎아주기”/부가세율 7∼5% 줄이면 세수 6∼8조 감소/텅비는 국고로 교통·환경문제 등 해결될지
누구나 지금보다 세금을 덜낸다면 좋아한다.
다만,나 말고 다른사람들의 세금은 안깎아준다는 전제아래서다 누구나 다 세금을 깎아주다가는 막히는 길을 뚫고,깨끗한 물과 공기를 확보해야 하는 등의 급한 나라살림을 꾸려갈 길이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다음 정권의 나라 살림을 책임져보겠다며 각 당이 내건 세금 관련 공약들은 세금에 관한 이같은 각자의 이기심과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있을뿐 국가 조세체계의 장래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라고 하기엔 곤란한 구석이 많다.
현재 국민총생산의 19% 수준인 조세의 비중을 7차 계획이 끝나는 오는 96년까지 적어도 22%로 올려야 재정이 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부의 예산편성 등을 통해 거듭 확인된 사실이다.
여기에 각 당이 공약한 사업을 다 이루자면 조세의 비중은 더 높아져야 할 판인데 각 당의 세금관련 공약은 대부분 세금을 깎겠다는 약속 위주로 채워져 있다.
민주당과 국민당은 다 함께 부가가치세율을 깎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부가세를 부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물론 듣기 좋은 이야기인데 문제는 현재 10%인 부가세율이 1%씩 내려갈 때마다 1조2천억원의 세수가 줄어든다는 데 있다(내년 세입예산 기준).
민주당이 부가세율을 3∼5%로 하고,국민당이 부가세율을 5%로 하겠다는 것을 풀어말하면 다음 정권을 잡았을 때 최소한 부가세에서만 전체세입의 15∼21%나 되는 세수감소(내년 기준으로는 6조∼8조4천억원)가 닥쳐도 끄떡없이 약속한 사업을 다 할 수 있다는 소리인 것이다.
그런 민주당과 국민당은 당장 민자당과 함께 내년 예산심의를 하면서 겨우 2천억원 남짓한 예산을 깎고 세목을 조정하는데 진통을 겪고 있다.
근로자와 중소기업에 대한 세금 경감 약속은 하도 자주들어 이젠 각당이 공약을 하고 실제 세금을 깍아도 그 「한계효용」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실정인데,이번 대선 공약에서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민주당이 약속하고 있는 「근로소득 분리과세」다.
근로소득을 다른 소득과 합쳐 종합과세하지 않고 따로 떼어 더 낮은 세율로 과세한다면 세금부담이 낮아지긴 한다. 그러나 이 경우 모든 소득을 종합과세한다는 조세의 기본 원칙을 깨는 것이 되며,실제로 각 당은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금융자산소득을 종합과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설혹 근로소득에 대해서만 종합과세원칙을 예외로 한다고 해도 이 때는 남미의 일부 후진국과 함께 세계적으로 희귀한 세제를 갖고있는 나라로 기록될 것이다.
근로소득자들이 상대적으로 느끼는 불공평함을 근소세를 깎아주어 해결할 것이 아니라 개인사업자나 자영업자들에 대한 과세포착률을 높여 해결하는 것이 정도인데도 근소세 경감에 대해서는 분리과세 등의 자세한 「각론」이 제시되고 있지만 사업소득에 대해서는 항상 『철저히 과세한다』는 식의 모호한 「총론」만이 제시되고 있다.
국민당은 근로소득세에서도 교통비·의료비·주거관련 금융비용 등을 법인처럼 손비로 인정하겠다고 공약하고 있는데,현행 세제의 소득공제라는 것이 바로 법인의 필요경비 인정과 같은 성격이고 보면 무슨소리인지 잘 이해가 안간다.
어느 당이 다음 정권의 나라살림을 책임지게 되든 미리 명심해 두어야 할 것은 세제개혁이란 세금경감의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근소세가 크게 깎여 여유가 생긴 사람이 자가용을 새로 바꿔 출근길에 나서면 종전에 2시간 걸리던 길을 4시간 걸려 출근하게 될 것이라는 웃지 못할 시나리오가 각 당의 세금공약에 군데군데 엿보인다.<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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