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프라인blog] 이상민 팬들, 천만원짜리 광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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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1993년, 여고 2학년 학생이 우연히 연세대 농구경기를 보게 됩니다. 삐쩍 마른 선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뛰는 모습에서 집착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필(feel)이 꽂힌 거죠. 팬이 됐습니다. 15년이 지났습니다. 선수는 결혼을 했으며 아이도 생겼습니다. 당대 최고의 가드라는 명성을 얻었고 챔피언에 올랐고 MVP도 거쳤습니다.

2006~2007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끝난 뒤 KCC는 대형 자유계약선수(FA) 두 명(서장훈.임재현)을 영입합니다. FA를 데려오면 보상 선수를 한 명 내줘야 하는데, 규정상 3명까지 보호선수로 지정할 수 있습니다. KCC는 FA 두 선수와 추승균을 보호 선수로 지정합니다. KCC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상민(35)은 보호 선수에서 제외됩니다. 삼성은 서장훈의 보상 선수로 이상민을 지명하죠. 팬들은 분노했고, 10일엔 KCC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기도 했죠.

14일, 일간스포츠 맨 뒷면에 '전면광고(사진)'가 실렸습니다. '그곳이 어디든…, 이상민! 당신이 가는 길이 정답입니다'라는 카피. 이상민을 위로하는 팬들의 마음이 담긴 광고였죠. 광고는 1000만원짜리였습니다. 누가 광고를 냈을까요?

아이디어는 팬 카페 '이응사(이상민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채팅방에서 나왔습니다. 처음에는 분노가 담긴 말이 오가다 '이럴 게 아니라 광고를 내자'는 의견이 모아졌죠. 기획은 카페 운영자 홍난희(31)씨가 맡았습니다. 프리랜서 편집기자인 홍씨는 직접 카피를 만들고 사진을 편집했습니다. 모금을 시작한 지 6일 만에 500명이 넘는 팬들이 1300여만원을 모았습니다. 홍난희씨는 바로 15년 전 이상민에게 필이 꽂힌 그 여고생입니다. 1만7000여 명의 회원을 거느린 '이응사'는 오프라인 모임을 갖지 않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무언가를 위해 돈을 모은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닐 겁니다.

홍씨에게 이상민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잘 모르겠답니다. 그냥 처음부터 좋았고, 그러다 보니 무뚝뚝한 거, 말수 적은 거까지 다 좋아보인답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힘들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만사 제쳐놓고 이상민 경기를 보러 갑니다. 그렇게 2시간을 보내면 다시 힘이 납니다."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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