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인쇄용 잉크개발서 시작…초기 아파트 도장 등 맡아|대한페인트잉크 노루표 페인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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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세계 각국의 지폐에는 그 나라에서 존경받고 사랑 받는 인물의 초상화가 약속이나 한 듯 담겨져 있다. 화폐는 경제행위의 수단이지만 그 나라의 긍지와도 직결돼 있다. 50년7월 부산 피난지에서 첫 발행된 한국은행권은 설비가 없어 일본내각 인쇄국에 제작을 의뢰해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당시 정부는 9·28수복 때 조선은행권(일제 때부터 51년까지 유통)을 발행하던 서울의 조선서적 인쇄기계를 부산으로 옮겨와 순수 국산화폐제작을 시도했다. 이때 가장 큰 난관은 화폐용 잉크의 조달문제였고 이를 해결한 사람은 당시 「대한 셋잉크사」 사장 한정대씨였다. 일본 후지화학연구소의 화학기사 출신인 한씨는 해방이후국내 잉크기술자들이 거의 없던 시절에 이미 셋잉크의 자체개발에 성공했던 터였고 마침 부산에 와있었다. 물론 한씨도 전쟁통이라 들판에 드럼통을 걸어놓고 원료를 끓이는가 하면 잉크의 산도측정기가 없어 혀끝으로 잉크 맛을 봐야하는 등 갖은 고생을 하며 지폐인쇄용 잉크를 간신히 만들었다.
그러나 지폐잉크를 납품했다는 명성이 알려지면서 한씨는 국내기반을 단단히 쌓았고 55년엔 서울 문래동에 현대시설을 갖춘 「대한잉크페인트」를 건립할 수 있었다.
오늘날 이 회사의 대표적 상품이 돼버린 「노루표 페인트」는 57년 이 공장에서 첫 생산됐는데 페인트의 제조가 잉크제조와 비슷하고 잉크비수기인 봄·여름철이 페인트 성수기라는 매력 때문에 착수했던 것.
노루표는 53년 한씨가 독일의 잉크기술견학 때 한 화랑에서 사온 노루그림에서 비롯됐다. 이후 끊임없는 기술개발로 외제페인트를 몰아냈으며 국내최초의 아파트였던 마포아파트, 기아산업의 새나라 자동차 도장공사 등을 맡았을 정도로 페인트의 비중이 갈수록 커지자 89년에는 상호를 「대한잉크페인트」에서 「대한페인트잉크」로 바꿨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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