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택시기사의 조그만 친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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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얼마전 오후의 일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서울 목동에 있는 「서울국제우체국」을 찾아가야 할 일이 생겼다. 처음 찾아가는 길이라 택시를 이용하기로 했다.
손님을 태우지 않은 빈 택시를 아무리 불러 세워도 차 문을 당당히 여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한채 목을 길게 빼고 운전기사의 눈치를 보며 세워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행선지를 재빨리 부르다가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쏜살같이 사라지는 택시를 보며 「따불을 부를겉」이라는 후회 속에 아쉬운 눈길로 애타게 떠나는 택시를 쳐다본게 하루 이틀이던가.
그린 신세를 나만이 면할 수 있다는 생각은 버린지 오래고 답답한 마음으로 서있는 내 눈에 빈 택시가 멀리서 오는 모습이 보였다.
내 손짓에 멈추는 택시에 순서를 잊지 않고 목을 길게 빼는 순간, 운전기사의 한마디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어서오십시오.』 그 한마디에 길게 빼놓은 목을 머쓱한 기분으로 집어넣었고 우리는 그 택시를 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질문에 다시 한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혹 행선지를 말했다가 다시 택시에서 쫓겨날 수도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목동에 있는 우체국이오.』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다시 쫓겨나겠구나』는 생각에 운전기사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던 어머니와 나에게 운전기사는 『일단 그쪽에 가서 행인들에게 물어보면 갈 수 있을 겁니다』라는 말로 우리를 감동시켰고, 목적지에 이르자 『안녕치 가십시오』, 『감사합니다』라는, 언제부터인가 낯설어버린 대화를 뒤로 한채 택시는 다시 떠났다.
운전기사는 택시영업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그에게만이 오늘날의 「택시문화」 「교통체증」이라는 무거운 현실이 예외일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활 속의 작은 여유」를 실천하는 모습은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택시운전기사의 조그마한 친절에도 황송하고 쑥스러워지는 시민들에게 택시운전기사들은 처음 자신이 핸들을 잡았을 때의 마음가짐과 함께 여유를 조금만이라도 보여준다면 어떨까.
모든 현실은 나의 마음가짐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 【윤성원<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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