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썽 많은 연금법 개정안, 매년 25만 명 550억 불이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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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맞벌이 부부였던 최모(62.경기 수원)씨는 올 1월 부인이 암으로 숨졌다. 최씨는 15년, 부인은 12년간 국민연금 보험료를 냈다. 최씨는 부인 사망에 따른 유족연금(월 23만원)을 신청하러 국민연금관리공단 지사를 찾았다. 그러나 이미 노령연금을 받고 있는 최씨는 유족연금을 받을 수 없었다. 최씨는 "살림살이가 빠듯해도 빠짐없이 보험료를 냈는데 내가 연금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아내 몫의 연금을 못 받는 게 말이 되느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국민연금 제도에는 불합리한 부분이 수두룩하다. 3년여 전부터 문제점이 지적돼 왔지만 아직 개선되지 않고 있다. 국회가 국민연금법 개정안 의결을 미루고 있기 때문이다. 배준호 한신대 교수는 "국민연금 제도의 큰 틀을 바꾸는 문제도 중요하지만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면서 가입자들에게 당장 혜택이 돌아가는 제도 개선까지 발목이 잡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 개정안이 의결돼 불합리한 부분이 개선되면 약 25만 명이 매년 550억원 이상의 연금을 더 받을 수 있다.

◆불합리한 제도=현행법에 따르면 부부가 모두 보험료를 낸 경우 배우자가 사망하면 유족연금을 못 받는다. 10년 이상 직장에 다니던 아들이 숨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아들에게 배우자나 아이가 없고, 부모가 연금을 받고 있다면 아들이 낸 보험료를 돌려받을 길이 없다. 60세 이후에 받는 노령연금, 가입자가 사망했을 때 받는 유족연금, 반환일시금 가운데 두 가지를 동시에 받을 자격을 갖춰도 한 가지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정한 상황에 처해 불이익을 받는 경우도 많다. 이혼을 하면 연금 가입자와 그의 전 배우자는 연금을 절반씩 받는다. 보험료를 내는 데 부부가 모두 기여했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금 가입자의 전 배후자는 재혼하면 연금을 받지 못한다.

자녀가 18세가 되기 2개월 전에 교통사고로 부모가 모두 사망하면 자녀는 2개월간만 유족 연금을 받는다. 그 후에는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국민연금관리공단 관계자는 "부모가 숨졌을 때 자녀가 18세 미만이면 유족연금, 18세 이상이면 사망에 따른 일시금을 수령할 수 있다"며 "그러나 유족연금을 한 달이라도 받으면 일시금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오판술 국민연금관리공단 급여실장은 "불합리한 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이 대부분 국민연금법 개정안에 반영돼 있다"며 "법 처리가 지연되면서 가입자들의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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