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위헌주장 반대한 법무장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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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김성호 법무부 장관이 어제 국회 답변에서 "선거법 9조에서 공무원의 선거 중립 의무를 규정한 내용은 위헌이라고 보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장관은 "(공무원의 선거 중립 조항은) 실정법으로 규정돼 있고, 이미 선관위나 헌법재판소에서 그에 대한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공무원법에는 대통령의 정치활동이 괜찮다고 돼 있는데 선거법에는 선거 중립하라고 한다"면서 "세계에 유례가 없는 위선적 제도로 위헌"이라고 한 데 대해 법무부 장관으로서 반대 의견을 표명한 것이다.

대통령이 '위헌'이라고 거듭 강변하고 있는데 각료가 나서서 "위헌이 아니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는 말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선거법과 공무원법의 두 개 조항이 상치한다"며 끝내 노 대통령을 두둔한 것과는 명백히 대조된다. 한 총리는 노 대통령의 "그놈의 헌법 때문에…" "5년 단임제 쪽팔린다"는 표현을 한 데 대해서도 "표현을 좀 재미있게 한 것"이라고 변명했다. 현실적으로 총리나 장관이 임면권자인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그러나 대통령이 명백히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에는 고언을 아껴서는 안 되며, 그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에는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라도 물러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은 총리나 장관으로서의 의무이기도 하다.

헌법재판소는 2004년 탄핵 기각 결정문에서 "대통령이 현행법의 합헌성과 정당성을 공개적으로 문제삼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해야 할 의무와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법무장관마저 위헌이 아니라고 하는데 청와대만 우기고 있으니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가. 청와대는 어제도 "선관위의 판단은 존중하지만 대통령은 정치적 정책적 판단에 관한 발언은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궤변도 이런 궤변이 없다. 선관위 판단을 존중한다면 그런 내용의 발언을 자제하는 게 마땅하다. 대통령이 헌법기관과 법률을 무시하는 행태는 당장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