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의식 물렁한 국감(국감추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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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부 궁지몰아 좋을 것 없다” 야 폭로 자제/중립내각 출범·초선들 경험부족도 한몫
국정감사가 뜻밖에 시들하고 조용하다.
각당이 합의한 10일 일정중 절반이상이 지났지만 뚜렷하게 파헤쳐진 것도 없고 끈질기에 물고 늘어지는 맛도 사라졌다.
국회가 근 1년 개점휴업해 국민이 궁금해하고 파헤쳐주길 바라는 정치현안이나 민생문제 등이 산적해 이번 국감에 거는 기대는 그 어느때보다 컸다.
그러나 국감이 시작됐지만 정부의 잘못된 시책·부정·비리가 시원하게 드러난 것이 없다. 한마디로 맥없는 국감으로 시종하는 느낌이다.
이런 현상을 놓고 『폭로위주가 아닌 진정한 의미의 국정감사 풍토가 정착돼 간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국감마저 대선전략에 묻혀 시들해져 간다』는 비판이 엇갈리고 있다.
맥빠진 국감이 진행되는 것은 기본적으로 민주당의 입장변화와 중립내각 출범때문으로 분석되고 있다.
김대중민주당대표는 국감직전 소속의원들에게 『폭로위주의 자세에서 벗어나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대안을 제시하는 성숙한 태도를 보여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 의원들의 질문끝에는 대체로 나름의 「소박한」 대안을 제시하려는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중립내각이 출범,여도 야도 없는 상황이 도래했으니 민주당 입장에서는 구태여 정부측을 궁지로 몰거나 억지주장을 펴 정부를 적으로 돌려세울 이유가 없다는 투다.
국감장에 나온 민주당의원들은 『왜 좀 더 몰아붙이지 않느냐』는 물음에 『공무원표도 생각해야지』라는 답변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육군본부·공군본부에 대한 국방위 국감에서 민자·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투어 군지휘자를 칭송하고 『예산삭감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한국은행 감사에서 민주당소속 재무위원들이 조순총재와 입을 맞춘듯 한목소리로 한은독립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19일 교체위의 체신부감사에서도 이윤수의원(민주)만 『제2이동통신 사업자로 선경을 결정했던 것은 노태우대통령의 퇴임후 보장책이 아니냐』는 수박겉핥기식 질책을 했을뿐 민자·민주·국민당 모두 언론에 보도된 의문점을 재탕하는데 그쳤다.
민주당측은 특별히 조사에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없고 민자당 의원들은 「파헤칠 것은 파헤친다」는 원칙선언에도 불구하고 아직 여당체질에 사로잡혀 있다. 국민당은 일관된 구심점이 없어 질의를 한 방향으로 몰아가는 힘이 달린다.
초선 의원들도 여야가 없는 흐물흐물한 분위기에 휩쓸려 『공연히 나섰다가 눈총받는 것 아니냐』는 생각에 주춤거린다. 초선의원들이나 해당 상임위를 처음 맡아보는 의원들의 미숙련도 한몫 하고 있다.
16일 행정위의 총리실 감사에서 신순범·최재승(이상 민주)·박명환(민자)의원 등은 총리를 감사 대상기관으로 착각,『총리는 답변하시오』를 연발했다.
잘못된 정부정책을 바로 잡고 질책하는데 구태여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대선전략을 지나치게 의식하거나 노력부족으로 반드시 짚어야 할 대목을 그냥 넘어가는 국감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국회가 정부 견제기능을 스스로 방기한다면 국회의 존재이유에 대한 심각한 회의가 일어난다는 것을 국회의원들은 생각해야 될때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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