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풀린 이통의혹 추궁/이상일 정치부기자(국감현장에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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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회 교체위가 19,20일 이틀간 체신부에 대해 벌인 국정감사는 대단히 비생산적이고 소모적이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의원들이 감사의 초점을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문제에 두고 집중적으로 매달린 것까지는 좋았으나 「칼날이 무딘」 질의를 남발하고 반복하는 바람에 의혹의 어느 한 구석도 제대로 파헤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틀동안의 감사에서 민자·민주·국민당소속 16명의 의원들은 질의에만 무려 12시간을 할애,이통문제를 중점적으로 따졌다.
그러나 의원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논리나 전문지식의 결여로 문제를 깊이 파고 들지 못했고 정부측의 해명성·반박성 답변에 쉽게 꺾이곤 했다. 예컨대 이동통신 기술로 정부가 애널로그방식을 채택한데 대해 의견들은 『선진기술인 디지틀방식을 채택하지 않은 것은 선경에 특혜를 주려고 한 것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나 정부측이 『디지틀방식은 북미에서도 아직 상용화되지 않고 있으며 개발 초창기에는 돈도 많이 들뿐 아니라 신뢰성도 낮다』고 응답하자 의원들은 「꿀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대꾸도 못했다. 그런데도 다음 차례의 의원들은 계속 똑같은 질문을 던져 빈축을 샀다. 애널로그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점에 문제가 있으며 정부측 답변은 어떤 근거에서 부적절한지 명쾌히 지적하지 못한채 무조건 『그 방식은 안된다』는 식이었다.
사업체 선정기준 등 다른 대목에 대한 질의도 마찬가지였다. 의원들은 서로 커닝이나 한듯 천편일률적인 이야기를 이틀동안 지리하게 반복했다.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자리를 지키는 의원수는 줄어들었고 심한 경우에는 위원장과 질의자,다음 순서 질의자 등 세명만이 국감을 진행하는 꼴사나운 장면도 목격됐다. 같은당 소속의원들끼리 질의 내용을 조정,의원별로 어느 한 부분만을 특화해 심층적으로 따지면 훨씬 효율이 높을텐데 백화점식 질문을 재탕삼탕 되풀이 했다. 덕분에 정부측은 비교적 편안한 상태에서 『앞의 답변으로 갈음한다』『잘 모르시는 말씀』 등의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결국 체신부 감사는 의원들이 「맥도 모르고 침통 흔드는」 식으로 덤벙대는 바람에 『이통사업자 선정과정은 지극히 공정했으나 국민반대 등 정치적 이유에서 사업이 백지화된 것』이라는 정부측 주장만 거꾸로 홍보하는 본말이 전도된 감사로 기록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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