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립성패 공직기강에 달렸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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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립내각을 표방한 현승종내각이 공직자에 대한 사정활동을 강화키로 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선의 공정한 관리가 총리와 장관 몇명을 갈았다해서 보장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총리와 장관들이 아무리 공정을 위해 노력해도 실무 책임자와 일선 공무원들이 지난날의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모처럼의 중립내각도 허울뿐의 것이 될 것임은 정한 이치다. 중립내각의 성패는 결국 공직사회가 현실정치로부터 얼마나 초연하며 직업공무원으로서의 정도를 걸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공직자들에게 다시 당부하고자 한다. 노 대통령의 탈당과 중립내각의 탄생이 어떤 연유에서 이루어졌건간에 이번 기회야말로 공직사회가 본연의 위치를 되찾을 절호의 기회다. 사정활동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공직자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각자가 단호한 결의를 다져야 한다.
사정활동이 대선의 공정한 관리를 위한 것만은 아니다. 임기말인데다가 중립을 표방한 내각이 들어섬으로 해서 공직사회의 기강이 흐트러지고 그에 따라 부패와 무질서 등 각종 혼란이 빚어지지 않을까 하는 사회적 우려가 높다. 그런 우려를 기우로 끝나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직사회의 기강이 확립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처럼 관주도적인 사회에서는 공직사회만 흔들림이 없이 제 몫을 다하면 사회안정은 낙관해도 좋다. 다소 생활에 불편이 있더라도 평소보다 더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엄정히 공무를 집행해야 한다. 그것 또한 공직사회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사정활동은 그동안 역대정권이 너무도 자주,그리고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해온 것이어서 자칫하면 일반국민들은 물론 공직자들조차 「또 때가 된 모양이군」하고 심드렁하게 여기기가 십상이다. 중립내각인만큼 이번만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정을 맡을 기관 스스로의 엄정한 자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과거의 숱한 사정활동이 별 성과없이 끝난데는 사정활동을 벌이는 공직자부터가 기강이 문란했던데 그 큰 원인이 있었다. 그저 사정활동을 벌일 게 아니라 그 사정활동이 엄정히 집행되고 있는지에 대한 감독과 감시도 아울러 펼쳐야 한다.
내각부터가 큰 잘못없이 과도기를 넘기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식의 안일한 생각을 가져서는 안된다. 다소의 무리와 마찰이 빚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두려워함이 없이 과단성있는 조치로 권위와 위엄을 확립해야 한다.
가장 효과적인 것은 비리 고위직에 대한 인사조처다. 정치적 중립을 해치거나 비리를 저지른 경우가 적발되면 서슴없이 처벌해야 한다. 사정활동의 성패는 곧 중립내각의 성패로 직결되는 핵심적인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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