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밀려 겉도는 경제(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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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정치권은 과연 경제에 신경이나 쓰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개각을 둘러싼 설왕설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주요정책에 대한 검토는 일단 미뤄두는 인상이 짙다. 본격적인 선거정국에 접어들수록 각 정당들은 경제를 득표를 위한 전략상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들 가능성이 크다. 정치 따로,경제 따로 돌아가니 기업하는 사람과 투자자들은 불안하다. 갈수록 냉각되는 증시는 단순한 거품의 해소과정을 걷고 있는게 아니라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다.
3당후보의 경제정책에 대한 기본인식과 정치사상 및 현안을 풀어가려는 의욕의 정도가 어떠한가를 투자자들은 면밀히 체크하고 있으며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분석한 다음에야 생산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정치 및 정치인의 동향이 투자를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된 것이다.
최근에 경상수지가 개선되었다고 하나 그 통계의 뒤에는 다음 정권이 털어버려야할 경기침체의 씨앗이 자라고 있음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기업인들은 세계시장의 경기흐름 보다 국내 정치권의 이상기류에 따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의 정도를 파악하고 설비투자 마저도 주저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돈이 남아도는 기현상마저 벌어진다. 은행이 돈을 빌려가라고 세일에 나서도 쓰겠다고 선뜻 나서는 기업이 적다. 그런데도 중소기업은 자금부족으로 도산사태를 맞고있다.
기능인력은 모자라서 야단인데 고학력자에게는 취업비상이 걸렸다. 수입증가세는 꺾였으나 호화사치품의 경우는 수입수요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원화의 평가절하에 따른 일시적인 가격경쟁력의 회복과 대중국 수출 호조에도 불구하고 4·4분기 수출경기 전망은 결코 밝지 않다. 근본적으로 금리나 임금·기술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숨기고 우리 경제가 그런대로 잘 굴러가고 있다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할 게재가 못된다. 앞으로 대규모 프로젝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아직 알 수가 없다.
이 모든 문제들에 대해 국민경제적인 차원에서 누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대책을 세워야 할 것인가. 우선 정부 공무원들이 서둘러야겠다. 정권교체기라 해서,또는 장·차관의 지위가 안정되지 않았다고 해서 일의 끝맺음을 엉성하게 하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 특히 경제부처의 경우는 안정되고 일관된 정책을 수행할 수 있도록 개각대상에서도 제외하자는 분위기가 아닌가.
6공화국 정부의 치적은 성장감속기에 경제문제를 얼마나 소신있게 다루느냐에 두어야 한다. 대선을 바라 보는 후보들은 추곡수매 등 국민생활에 예민하게 작용하는 정책들을 득표전략 차원에서만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 잘못했다간 나라경제뿐 아니라 자신의 발목을 죄는 부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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