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후보 검증, 진흙탕 싸움으로 갈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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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한나라당 이명박.박근혜 후보 간에 본격적 검증 공방이 가관이다. 한쪽이 '소문'이라며 의혹을 흘리고, 다른 쪽은 "그러다가는 다음 총선에서 공천도 못 받을 것"이라고 압박을 가한다. 박 후보 측은 "캠프의 한 의원이 두 달 전 사석에서 한 얘기를 뒤늦게 문제 삼은 것은 의도적"이라며 "이 전 시장 측이 '경부운하'의 허점이 드러나자 이를 희석하기 위해 전선을 확대시킨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후보 측은 "아니면 말고 식의 전형적 김대업 수법"이라며 당 윤리위 제소는 물론 법적 대응까지 하겠다고 받아치고 있다. 진흙탕 싸움이 따로 없다.

쟁점이 된 의혹은 두 가지다. 박 후보 측 곽성문 의원은 "이 전 시장이 친인척 명의로 신탁한 재산이 8000억~9000억원가량 된다는 소문이 있다"고 했다. 같은 진영의 최경환 의원도 한 시사주간지 기사를 인용해 "이 전 시장이 수백억원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피한 재미동포 김경준씨와 투자운용회사 BBK의 공동대표였으며,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줬다고 한다"며 사실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이 후보 측은 "둘 다 허위"라고 반박했다. 8000억원 재산 은닉 주장에 대해서는 "항간의 소문을 악의적으로 이용한 것"이라고, BBK 대표설에 대해서는 "그 회사 주식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으며, 공동대표를 맡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당내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정책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은 불가피하다. 의혹을 제기할 수도 있고, 비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검증에도 금도(襟度)가 있어야 한다. 떠도는 소문만 가지고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흑색선전이며 일방적 흠집 내기와 다름없다. 증거를 내놓는 것은 의혹을 제기한 후보 측의 몫이다.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의혹을 제기한 쪽에서 책임져야 마땅하다.

한나라당에는 후보검증위원회가 구성돼 있다. 1차적으로 검증위에 상대방 의혹에 관한 자료를 제출해 검증위의 판단을 구하는 게 순서다. 검증 공방은 그 후에 벌여도 늦지 않다. 결과 못지않게 절차를 중시하는 게 민주주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