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주먹 테러(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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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지난 주말은 세계 지도자들에겐 액운의 날이었던 것 같다.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3일 한 지방도시에서 열린 통독 2주년기념행사에 참석한뒤 시가지를 걷다가 군중속에서 나타난 한 괴한에게 복부를 얻어맞는 봉변을 당했다. 아키히토(명인)일왕도 4일 한 지방도시에서 벌어진 전국체육대회에 참석,개회식 도중 한 괴한으로부터 화염병 세례를 받았다. 다행히 콜총리는 한대 맞고서도 시민들과 계속 어울렸고 아키히토일왕은 화염병이 3∼4m 앞에 떨어져 아무런 피해를 보지 않았다.
콜총리의 경우는 범인이 군중속으로 도망쳐 그 정체를 알 길이 없지만 아마도 통독에 불만을 품은 사람의 소행임에 틀림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키히토일왕의 경우는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했는데 범인은 일왕의 중국방문을 저지하려는 좌익계 테러분자임이 밝혀졌다.
이 두 사건을 보면서 흥미를 갖게 되는 쪽은 화염병이 아니라 맨주먹 테러다. 맨 주먹으로 사람을 가격하는 것은 어찌보면 유머러스한 행동으로 보여져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따지고 보면 독일인들이 콜총리에게 나타내는 애증의 감정은 통독이라는 역사적 위업을 성취한 지금과 그 이전의 평범한 서독총리시절과 많이 달라진게 사실이다.
서독총리시절 그는 특유의 고지식함과 촌스러움 때문에 곧잘 유머거리가 되었었다. 가령 이런 유머도 그런 촌스러움을 비꼬는 것중의 하나다. 콜총리가 어느 유명한 조각가의 아틀리에를 방문했다. 콜총리가 조각가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다지도 훌륭한 조각품을 만드셨습니까.』 조각가가 대답했다. 『저는 이탈리아산 대리석 덩어리를 한조각 한조각 파들어 갔습니다.』 그러자 콜총리는 『재미있군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그 대리석안에 그런 조각품이 있는 것을 아셨소』라고 감탄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난센스 유머속에는 콜총리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 콜총리가 통독의 위업을 이루고도 인기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통독후유증으로 인한 심각한 경제난 때문이다. 우선 당장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이전만 못하면 등을 돌리는게 세상의 인심인가보다. 통일의 이상과 현실을 이처럼 큰 괴리를 지니고 있다.<손기상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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