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에만 관심… 정신투자는 인색…/책 너무 안읽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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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성인 61%가 월 한권도 안봐/가구당 연 책구입비 만원… 보약값의 3/1수준/나이들수록 책 멀리해 정보화사회 대처 의문/입시에 찌들려 어릴때부터 독서습관 못길러/한국갤럽조사연
책을 너무 안읽는다.
경제적 여건이 나아지면서 물질이나 육체에 쏟는 관심은 늘고 있으나 정신에 대한 투자는 제자리걸음이어서 선진국 도약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1인당 GNP만으로는 들어설 수 없는 선진국 관문의 통과가 의문시되고 있다. 특히 다가올 정보화 사회에서 낮은 독서율은 국가의 경쟁력을 쇠퇴시킬 우려마저 안고 있다.
지난해 한국갤럽조사연구소가 밝힌 조사결과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 가운데 한달동안 주간지·월간지 이외에 한권의 책도 읽지 않은 사람이 61%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책 안읽은 비율은 더욱 높아져 20대는 38%,30대는 57%인 반면 40대는 70%,50대는 87%가 매달 한권의 책도 읽지 않고 살아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연구소가 과거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같은 수치가 지난 87년에는 62.1%에서 89년에는 68%로 높아졌다가 90년에는 60%로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으나 지난해에는 다시 높아져 1인당 GNP의 지속적인 성장에도 불구하고,정신적 성장이 뒤따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1년에 5권 이상의 책을 읽는 비율이 13%,10∼24권이 38%,1∼9권이 24%였으며 한권도 읽지 않는 비율은 25%였다.
연간 책 구입비(87년 기준)도 가구당 보약 구입비 3만8천4백60원에는 물론 화장품 구입비 1만3천5백24원에도 못미치는 1만5백24원에 불과해 독서보다 화장이나 건강에 더 비중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1인당 지출로 환산하면 1천3백원정도로 독일(서독) 10만원,미국 7만원,일본 4만6천원 등에 비하면 미약한 수준이다.(90년 유러모니터 조사)
독서 습관은 어려서부터 길러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그러나 우리의 어린이들은 학교공부와 과외공부에 치여 책읽을 시간을 거의 뺏겨 버리고 그나마 남는 시간은 TV가 차지한다.
지난해의 한 출판사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의 국민학생들이 1년에 평균 1백권의 책을 읽는데 비해 우리나라 국민학생들은 2.8권에 그쳐 현저한 차이를 드러냈다. 또 국민학생 가운데 32%는 교과서 이외의 책은 전혀 읽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학원 또는 집에서의 과외활동(38.4%)·학교공부(28%)가 독서에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되는 것으로 지적했다.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 다가온 대학입시로 사정은 더욱 심각해 진다.
학국갤럽이 지난 5월 서울시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월평균 독서량은 0.9권으로 한달에 책 한권 읽기가 힘들다. 중·고등학생들 역시 가장 큰 독서장애 요인을 공부나 과외활동(55.2%)으로 지적했다.
이같은 독서부족은 대학생이 됐을 때 더욱 심각한 형태로 나타난다. 차인석교수(59·서울대 철학과)는 『매년 강의하기가 어려워 진다』며 『기본적인 책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환경을 반영,매년 도서발행부수는 늘어나고 있으나 참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89년 48.4%,90년 49%,지난해 64% 등으로 주종을 이루고 있다.
낮은 독서율은 사회적 투자 소홀과도 무관하지 않다. 세계 주요대학 학생 1인당 도서수(한국대학교육협의회·92년)를 비교해 보면 서울대가 48권인데 비해 일본 동경대 2백96권,영국 옥스퍼드대 5백93권,미국 미네소타대 2백51권 등으로 대학에서조차 책에 대한 인식이 뒤처지는 실정이다.<김상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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