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불견의 상위장 인선잡음(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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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4대국회가 넉달만에야 겨우 상임위원장을 뽑고 정상화 됐지만 상위장 자리를 둘러싼 잡음과 추태는 정말 실망이 아닐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우리는 선출된 몇몇 상임위원장에 대해서는 이런 사람이 어떻게… 하는 의아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시장바닥의 흥정같은 정당간의 나눠먹기,탈당위협으로 감투를 따내는 타락한 정치윤리 등을 보고 개탄을 금하기 어렵다. 더욱이 이런 일이 대선을 앞두고 각 정당이 모두 개혁과 깨끗한 정치를 목청 높여 외치는 가운데 이뤄졌으니 그 말 다르고 행동 다른 행태에 기가 찰 뿐이다.
새로 뽑힌 상임위원장 중에는 과거 돈문제로 연로한 선배의원을 폭행한 전력을 가진 사람도 있고,조직폭력배와의 관련여부로 구설에 오른 인물도 있다.
정당별로 나눠먹는 몫에 따라 당지도부가 지명해 국회서 선출된 위원장인만큼 절차에는 어떤 문제도 없으나 그래도 국회 상임위원장이라면 소관부처의 장관과 동격으로 대접받고 해당 상위의 어른노릇을 하는 자리다. 동료의원의 신망도 있어야 하고 행정부쪽 관료들에게도 위신이 서는 사람이라야 할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 그럴만한 것 같지 않은 사람도 더러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또 한번 드러났지만 현 정치권에서는 탈당과 탈당위협이 왜 이리 흔한가. 툭하면 탈당하겠다는 위협이 나오고 실제 탈당한 의원도 많다. 탈당을 무기삼아 감투를 따낸 사람도 있고 감투를 못따자 정말 탈당을 결행할 것이라는 의원도 있다고 들린다. 이런 현상은 한마디로 정당이 제대로 정당구실을 못하고 당의 리더십이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정당의 수준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것이다. 국민당의 경우 상위장 두자리를 놓고 인선내용이 세번이나 번복됐다는데,이래서야 당의 지도력이 설 수 있겠는가.
이처럼 요직배정이 원칙도,기준도 없이 이뤄지고 탈당위협이 묘약처럼 통하는 정계 풍토는 정당과 정치인 스스로가 국민불신을 부르는 것 밖에 안된다. 정치권의 이런 추태가 자라나는 세대들의 눈에 어떻게 비치겠으며 학생들의 반장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치겠는가.
이번에 보면 상위장 자리 나눠먹기로 가뜩이나 늦은 국회정상화를 며칠씩이나 더 지연시키면서 결국은 자리 하나를 더 만들어 내기까지 했다. 이른바 환경특위를 새로 두기로 한 것인데 이야말로 「위당설위」라고나 할까.
우리는 정치인들 사이에 자리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잡음이 나는 것은 어느정도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현상 역시 우리 정계의 오랜 관행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최근들어 우리 사회는 과거에 통하던 관행이라도 나쁜 것은 속속 거부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른바 「여당 프리미엄」이란 오랜 관행을 지금 끊자는 것만 봐도 정상화를 지향하는 대세의 흐름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정치권도 발상과 감각을 새롭게 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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