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서] '바보의 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7면

일본에서 올 한해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바보의 벽(バカの壁)’이다. 2백30만부 이상이 팔린 이 책의 내용은 “현대인의 70%는 자기가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정보를 스스로 차단하려 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보의 벽’에 가로막혀 벽 밖의 세상은 보려하지도,들으려 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대부분 사람들은 근원적으로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들으려 하고 내가 항상 옳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따라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고 관계도 좋아진다”는 ‘상식’은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요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가 어디가나 이 ‘바보의 벽’을 읊고 있다. 지난 9일 이라크에 대한 자위대 파견 결정 이후 거세게 일고 있는 반대 여론에 대한 원인 분석이다.지난주에는 무려 세차례나 ‘바보의 벽’을 인용했다.“내가 아무리 자위대 파견에 대한 당위성을 조목조목 설명해도 반대론자들은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다”“열심히 설명하면 (상대방이) 알아듣는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설명이다.

최근 싸늘해진 일본과 중국간 관계도 ‘바보의 벽’으로 설명되고 있다. 지난 10월 중국 시안(西安)의 시베이(西北)대학 문화제에서 일본 유학생의 음란한 춤으로 인해 야기됐던 양국간 갈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아사히 신문은 22일 “현재까지도 당시 일본 유학생은 자신의 행동이 뭐가 그리 잘못됐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고,중국 정부 또한 중국 학생들의 폭력행위를 ‘애국행위’로 여기는 것이야 말로 ‘바보의 벽’”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뭐든지 자신의 뜻대로 안되거나 벽에 부딛힐 때마다 “‘바보의 벽’을 탓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영환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