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도올고함(孤喊)

정방의 석금이 우는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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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제천 청풍호 수면에 비치는 비봉.

세음(世音)을 멀리하고파 상한(傷寒)의 오의(奧義)를 교수(敎授)하러 제천(堤川) 세명대(世明大)에 내려갔던 차에, 청풍(淸風) 호반(湖畔) 능강리에 일숙(一宿)을 청(請)할 만한 자리가 있다 하여 상경(上京)치 아니하고 하룻밤 비봉(飛鳳)을 벗삼기로 하였다. '승람'을 펴면 정인지(鄭麟趾)의 시를 들어, 지세최고(地勢最高)라 한 글귀가 눈에 띈다. 실제로 남도에서 태백시를 제외하면 지세가 가장 높은 곳으로, 서울 남산 꼭대기보다 높다. 신개(申)의 시에 행행수복(行行水複)이요, 우산중다(又山重多)라, 소민거도화중(小民居圖畵中)이라 하였으니, 돌고 도는 물이 겹겹이요, 싸고 싸는 산이 거듭 거듭이라, 약간의 민가가 그림 속에 있는 듯하다 한 그 정경이 의구(依舊)하다. 민풍(民風)이 박략(朴略)하고 산천(山川)이 기수(奇秀)하여 남도(南道)의 으뜸(冠)이라 한 한벽루(寒碧樓)의 누기(樓記)는 결코 허언(虛言)이 아니렷다. 천년교목(千年喬木)에 천봉(千峰)이 합(合)한다 한 정추(鄭樞)의 시구대로 금수산(錦繡山)의 첩첩돌올(疊疊突兀)한 자태는 계림(桂林)의 이강(江)을 무색하게 한다.

세간(世間)의 쇄사(事)에 번심(煩心)이 일었는지, 수격삼천리(水擊三千里)라 장생(莊生)이 말한 대붕(大鵬)의 위세에 짓눌렸는지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베란다에 나가 일도징강(一道澄江)에 비치는 월악(月岳) 영봉의 효색(曉色)을 바라보니 채색 아닌 수묵의 농담이 끝없이 춤을 추건만 그 선경(仙景)의 적정(寂靜)을 깨는 것은 와공(蛙公)의 합창이로고. 신휘(晨暉)를 가르는 새벽닭의 울음소리는 와공의 합창을 잠재우고 온갖 산조(山鳥)의 지저귐을 유도하건만, 세파(世波) 탓인지 오심(吾心)의 비감(悲感) 탓인지, 계명(鷄鳴)은 창랑(暢朗)치 아니하고 피 토하는 계면일 뿐이로다. 무엇이 저토록 처창(悽愴)할꼬! 먼동이 트자마자 개벽의 서광을 따라 금수산 신선봉 계곡을 올랐다. 십리가량이나 점입소로(漸入小路)하는데 갓 돋는 녹엽(綠葉)을 투과하는 조광(朝光)의 빛줄기들은 계곡에 피어오르는 물안개마저 녹색으로 물들이고 만다. 어찌 삼신산(三神山)이 따로 있으랴!

아침 햇살이 거대한 산세를 살포시 누를 즈음, 깎아지른 바위길 틈새를 굽이 돌아 올라서니 "으악!" 입에서 나오는 건 경탄(驚歎) 일성(一聲)일 뿐이었다. 내 회갑(回甲) 일생애(一生涯)에 내변산 월명암의 낙조에 탄성을 지른 적이 있고, 백암산(白巖山) 운문암(雲門庵)의 탁 트인 경관에 비선(飛仙)이 된 듯한 느낌을 받은 적이 있지만, 이곳 정방암(淨芳庵) 일망무제(一望無際)의 충격은 영주 부석의 시감(詩感)을 압도한다. 아차(峨嵯)한 절벽의 석금(石琴) 아래 한 자락에 간신히 얹혀놓은 듯한 정방사는 의상(義湘) 문하의 고승 정원(淨圓)이 의상이 공중에 던진 지팡이를 따라가다 이곳에 안착하여 생긴 향기로운(芳) 암자라 하여 그 이름을 얻은 것이다.

그 조촐한 법당에 걸려 있는 주련이 그 수려한 가람의 품격을 더해준다.

高無高天還返底 높음이 하늘보다 더 높은 것 없으나 도리어 아래로 내려가고

淡無淡水深還墨 맑음이 담수보다 더 맑은 것 없으나 도리어 깊어 검디검도다

僧居佛地少無慾 스님은 부처님 정토에 거하니 욕심이 있을 수 없고

客入仙源老不悲 객은 신선의 근원에 들었으니 늙음 또한 슬프지 않구나!

나는 이 주련을 보자마자 한 수 읊었다.

淨圓覺義石琴鳴 정원의 깨달은 뜻 저 석금이 울어대고

仙境又仙却歸俗 선경이 더욱 선하니 오히려 세속과 분별이 없도다

大美不言時不議 천지의 이 큰 아름다움은 말이 없고 사시의 흐름도 담론을 떠나 있건만

談世小人不盡曲 세상을 말하는 소인배들의 왜곡은 끊임이 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