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뭐가 그리 미안하고, 뭐가 그리 고마운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지난주 열린 남북 장관급 회담에서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북한 측에 상식 밖의 저자세를 보였다고 해서 화제다. 이 장관은 북한 측 수석대표인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에게 말끝마다 "감사합니다" "미안합니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마지막 날 회의에서는 "마감 종결회의를 할 수 있게 돼 감사합니다"라고 했고, 전날 저녁식사 자리에서는 "만찬을 간소하게 실무적으로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회의 때문에 만나서 회의한 것이 어째서 고마운 일이고, 상호 합의에 따라 행사를 간소화한 것이 왜 미안한 일인가. 북한 주민의 딱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쌀 차관을 제공하지 못한 데 대한 안쓰러운 심정이 그렇게 표출됐는지 모르지만 어차피 그것은 원칙의 문제였다. 정부는 북핵 문제의 진전과 쌀 지원을 연계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 이미 본란에서 지적한 대로 원칙에 맞게 정당하게 행동한 것이다. 그런데도 뭐가 잘못됐기에 그리도 미안하고, 그리 고맙다는 것인가. 혹시 국민이 모르는 무슨 약점이라도 북한에 잡혔단 말인가.

손님을 빈 손으로 보내는 것이 안타까울 수 있고,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번 회담에서 이 장관이 고개를 숙일 일은 없었다. 이 장관은 개인 자격이 아니라 장관급 회담의 대한민국 수석대표로 북한 측을 상대한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국민은 경우 없이 북한 측에 저자세나 보이는 그런 통일장관을 원치 않는다. 북한을 포용하되 따질 일은 당당하게 따지는 장관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