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예언(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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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국작가 조지 오웰이 그의 마지막 소설 『1984년』을 쓴 것은 표제의 연대보다 37∼38년 앞선 4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는 전체주의가 가까운 장래에 세계를 지배할는지도 모른다고 보고,소설을 통해 그것을 경고하려 했다. 그때그때의 필요에 따라 사실을 왜곡,날조해 개인생활을 파괴하고 인간성을 짓밟는 전체주의의 악랄한 모습이 이 소설속에 생생하게 묘파돼 있다. 오웰은 이 소설이 발표된 직후인 50년 사망했는데 그가 예언한 전체주의의 모습은 거의 정확하게 현실로 나타나 세상을 놀라게 했다. 영국시인 W H 오든은 『그가 만약 살아있었더라면 그 자신도 놀랐을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문학이 현실상황과 무관할 수 없다면 그 예술형식을 통해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역사속에서 「있을 수 없는 일」도 흔히 벌어진다면 문학이야말로 그것을 미리 그려낼 수 있는 유일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가상소설이나 미래소설 같은 것이 독자에게 각별한 흥미를 안겨주는 것도 그 까닭이다.
우리 전통사회에서의 「예언설화」들도 미래의 일들을 정확하게 맞힌 사례들이 많다. 『삼국사기』에서 「백제는 보름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는 기록은 백제가 망할 것을 예언한 대목이며 이밖에 고려와 조선의 건국을 미리 예견한 설화들은 얼마든지 있다. 고려말의 이성계가 서까래 세개를 짊어진 꿈을 꾸었는데 이것은 임금왕자를 뜻하는 것이라는 몽조예언설화도 그중의 하나다.
작년에 발표된 한 신예작가의 가상정치소설이 대통령의 민자당 탈당을 정확하게 맞혔다 해서 화제다. 현역 정치인들을 실명으로 등장시켜 앞으로의 정국향방을 다각도로 전개한 이 소설은 야당후보가 피습당해 정국이 혼란에 빠지고 마침내 계엄령이 선포된다는 내용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실상황을 토대로 혹 「있을 수 있는」 미래의 상황을 그린 것 뿐이고,그 가운데 대통령의 탈당이 맞아떨어졌을 따름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려는 까닭은 그만큼 우리네 정치가 혼미하고 불안정 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계엄령」이니 「피습」이니 하는 것은 말만으로도 섬뜩하지 않은가.<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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