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의 중요성 역설 | 동-서 문명과 자연과학-김필년 지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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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서구문명에서 근대적 자연과학이 발전하게 된 원인들을 전통 중국문명과의 비교를 통해 드러내고자 했다.
저자는 서구에서만 근대적 자연과학이 발전하게 된 원인을 해명하려 했던 여러 학설들을 비교·검토하면서 특히 그리스에서 발전한 합리적 정신, 즉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수학의 등장에 초점을 맞춰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그 중이 책에서 논쟁의 핵심을 이루는 것은 니덤의 이론이다. 니덤은 전통중국문명에서 근대적 자연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중국에서 자본주의가 발전하지 못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과학과 기술은 서구문명보다 앞서 있었으나 상업자본에 대한 봉건적 억압이 자본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았고 이에 따라 기술발전도 크게 둔화됨으로써 정체상태를 면치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니덤의 주장은 기술 및 생산력의 발전이 과학, 곧 상부구조의 발전을 초래한다는 마르크스주의적 전제를 깔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기술 및 생산력의 발전보다 이론적·추상적 논리와 수학적 정신이 근대과학 발전이 토대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따라서 전통 중국사회에서 기술이 고도로 발전했던 사실을 발견하고 중국문명에 근대적 자연과학이 발전할 잠재력이 있었다고 주장하는 니덤의 이론에 맞서 이 책의 저자는 전통 중국의 발전된 기술이 중국인들로 하여금 실용적 세계관에 안주케 함으로써 추상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하게 방해했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이 같은 논지는 현재 우리 나라의 경제발전 방향을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는 백가 쟁명식 논쟁에 적지 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곧 기초과학의 토대가 없는 기술발전이란 모래 위의 누각에 불과하며, 나아가 기초적 기술이 축적되지 않은 단계에서 첨단기술을 바라는 것은 허황된 꿈을 꾸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점을 은연중에 시사하고 있다. 까치간, 4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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