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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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우리의 대학생들이 성조기를 태우며 시위하는 장면을 본 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한 적이 많았었다. 엊그제 대만의 우리 대사관 앞에서 태극기를 불태우며 시위하는 대만의 청년들을 보면서 두 가지 사건이 겹쳐지며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6공화국의 유일한 치적인 북방외교의 마지막카드로 중국과 정식수교를 한다니 대만 정부가 국교단절의 으름장을 놓고 대만 청년들이 태극기를 태우며 시위를 하는 것은 우리가 성조기를 태우며 미국을 성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40년 우방을 헌신짝 버리듯이 버리고 새 친구를 얻는 게 과연 국익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이 미국과 일본에 이어 3대 시장으로 부상하고 천진에 한국전용공단을 건설하는 등 수교의 필요성은 있지만 방법의 묘도 있고 아울러 대만도 중요한 경제파트너임을 간과하고있는 것 같다. 먼저 최근의 국제동향을 보면 과거에 중국과수교하면서 대만과 국교를 단절했던 나라들이 대만의 경제적 비중을 고려해 다시 경제적인 관계를 증대시키고 있고 니카라과는 오히려 중국과 단절하고 대만과 복교한 경우도 있다.
또한 중국과의 수교는 필연적이지만 수교과정에 있어서 싱가포르의 교훈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올해 초에 싱가포르는 중국과 수교를 하면서 몇 년 전부터 북경과 대북을 드나들며 대만을 달래 실리를 찾았는데도 우리는 그러한 노력이 없었다는데 아쉬움이 있다.
실제 우리나라와 대만과의 경협규모도 만만치 않다. 대만은 지하철·항만·핵발전소 등 14개 분야 7백79개 프로젝트에3천30억 달러를 투입할 계획으로 이중 프로젝트 당 공사비가3억8천만 달러 이상 되는 것이90%를 넘어 대형건설사가1∼2개에 불과한 대만으로서는 우방이자건설경험이 많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한국에 문호를 개방하겠다고 약속을 했고, 이를 위해 올해 1월에는 관계부처 대표들이 대만을 다녀오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24일 국교수립을 하고 10월에는 양국의 정상들이 만난다는 계획은 조급했다고 보여진다. 이제는 확정된 일이지만 한 명의 원수를 만드는 것은 1백 명의 친구를 새로 얻는 것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양국사이에서 진정으로 국익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한다. 아울러 한반도의 긴장완화, 유엔 가입 등을 위해 소련과 수교 시는 차관을 제공했다지만 정부의 부인대로 차관을 제공하면서까지 국교를 수립하는 저자세 구걸외교는 정말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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