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책읽기Review] 히포크라테스 비술은 피·뽑·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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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의 진실 데이비드 우튼 지음, 윤미경 옮김, 마티, 392쪽, 1만6000원

원제가 '나쁜 의학'이긴 하지만 최근 말썽이 됐던 의사협회 로비설 같은 의료계의 어두운 면만 들춰낸 것은 아니다. 단 역사는 악당도 영웅과 함께 다뤄야 한다는 관점에서 의학사를 서술하면서, 1865년까지 의사들은 해를 입히지 않으면 다행인 존재였다는 도발적 주장을 펴기는 한다.

영국의 역사학 교수인 지은이에 따르면 기원전 500년 고대 그리스에서 19세기 말까지 서양 의사들의 유일한 치료행위는 사혈(瀉血), 즉 피 뽑기였다. 이는 인간에게는 네 가지 체액이 있으며 이것들이 불균형을 이룰 때 병이 난다고 본 히포크라테스의 가르침 탓이었다. 그러기에 피를 뽑고, 토하게 하고 설사를 하게 하는 방법으로 체액의 균형을 맞춰 환자를 치료하려 했다. 즉 히포크라테스의 치료 대상은 '질병'이나 병균이 아니라 '환자'였다. 그의 영향 아래 의사들은 피 뽑기에 열중했고 그 결과 19세기엔 표준적인 히포크라테스 요법으로 기관지폐 전염병을 치료했을 때 치사율이 3분의 2가량 늘었을 정도였다. 환자를 치료한다며 실제로는 환자를 죽게 했다는 점에서 히포크라테스 의학은 '나쁜 의학'이었다.

지은이는 1865년 영국 의사 조지프 리스터가 복합골절에 대해 방부 외과수술을 시연한 것을 근대 의학의 전기로 본다. 전염병이 세균이나 미생물에 의해 옮겨진다는 세균설로 의학 패러다임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의학이 단계적인 진보를 이루지는 못했다. 리스터의 시술에도 불구하고 주요 전염병에 대한 치료법은 30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됐다. 레벤후크가 1677년 발명한 현미경은 19세기 중반에서야 의학연구에 쓰였고 1872년 발견된 페니실린은 1941년에서야 전염병 치료에 쓰였다.

1795년 한 의사가 질산을 흡입하면 고통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하지만 마취수술의 선구자는 뉴욕, 보스턴 등 당시 '주변부'의 치과의사들이었다. 1846년 런던에서 마취법이 처음 사용됐을 때 '양키의 속임수'라 했단다.

의사들의 보수적인 집단 자의식, 전통과 권위에 대한 한없는 맹신이 의학사를 '지연된 역사'로 만들었다는 지은이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한 것 아닐지 따져 볼 일이다.

김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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