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립대들도 경쟁 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일본 국립대학들에 개혁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일 정부가 '무풍지대'였던 국립대학에 '경쟁 원리'의 도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국립대학들은 지금까지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으로 지탱해 왔다. 그러나 2004년 법인화 이후 인사.예산권을 자체적으로 행사하는 대신 교원들의 공무원 신분이 사라졌다. 이름만 국립대학일 뿐 사실상 정부의 보호막이 사라진 셈이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국립대학에 국가가 지급해 온 '운영교부금'이 매년 1%씩 깎인다.

그나마 학생 숫자가 아닌 실적 위주로 바뀔 참이다. 이에 따라 사립대 못지않은 생존경쟁을 벌여야 한다.

◆ "교부금도 학교 실적 따라 줘야"=일 재무성은 21일 재무상 자문기관인 재정제도심의위원회에 "성과주의를 도입하게 되면 현재 전국의 87개 국립대학 중 85%에 해당하는 74개 대학의 교부금이 삭감될 것"이라는 조사 결과를 전달했다. 현재는 주로 대학 정원에 근거해 교부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각 대학의 연구실적이나 노력을 반영하는 평가 기준을 택할 경우 13개 대학만 교부금이 늘 것이란 분석이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도쿄대는 교부금이 112.9% 증가하게 되는 한편 효고(兵庫)현 교육대학은 90.5%가 줄게 된다. 교부금이 2배가 되는 학교가 있는가 하면 10% 이하로 줄어드는 학교도 생길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일 재무성은 국립대학 예산을 효율적으로 분배하기 위해 교부금을 성과주의 원칙에 따라 배분하는 쪽으로 과감히 바꿔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쟁 원리를 도입해야 국립대학들의 연구와 교육 수준도 향상될 것이란 판단에서다.

일 국립대학에 대해선 2004년 법인화 이후 2010년께 '제2기 중기 개혁 방안'을 책정할 방침이며, 이번 재무성의 조사결과가 크게 반영될 공산이 크다.

◆ "'선택과 집중'이 필요"=일 국립대학으로선 정부의 교부금 감액은 '생명줄'이다. 실제 정부의 교부금 지원 규모는 2005년에 1조586억 엔으로, 대학 수익의 45%를 차지한다. 대학부속병원의 수익(27%)이나 수업료 등 학생 수납금(15%)을 훨씬 웃돈다.

성과주의 도입을 주장하는 경제재정자문회의나 재무성 측에선 "현재와 같이 교부금을 전 학교에 일률적으로 매년 1%씩 깎게 되면 모두 망가진다"며 "실적에 따라 -3%인 학교도 있고 +1%인 학교도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도의 연구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선 국립대에도 경쟁원리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구실적만 따지다 보면 교육학부나 문과계 학부는 없애야 하고 재정이 여의치 않은 일부 국립대는 문을 닫아야 한다는 이야기"라며 "그래선 제대로 된 국립대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반대 주장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독자적인 연구와 교육에 애쓰고 있는 대학에는 어떤 형태로든 교부금을 차등 지급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대부분의 대학도 동의하고 있는 만큼 국립대학의 성과주의 도입은 대세라는 분석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