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이과수 못 가 화나셨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이과수 폭포' 출장을 떠났다 귀국한 '혁신감사포럼' 감사들은 갖가지 해명을 내놓았다. 누구는 "이제 우리는 관심의 폭을 미국.유럽에서 남미로 넓혀야 한다"고 했다. "혁신감사 세미나 관련 자료를 열심히 확보했고, 준비를 많이 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또 다른 감사는 "우리는 단순 가담자다. 왜 엉뚱한 사람을 잡느냐"고 언성을 높였다. LA 술판에 대해 "여성 도우미를 부르지 않았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TV 화면에 도우미의 모습이 잡혔는데도….

궁금한 것이 있다. 그들이 그렇게 떳떳하다면 왜 행사 일정을 강행하지 않고 도중에 귀국했을까. '감사'라면 국내 최고기관인 감사원 관계자의 입에서 "남미까지 건너가 감사제도를 배우겠다니 생뚱맞다. 거꾸로 남미에서 우리나라에 배우러 와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공기업 감사들이 이 지적에 어떻게 답변할지 모르겠다.

기획예산처도 마찬가지다. 예산처는 '예산처가 이번 출장을 사전에 알았다'는 보도에 해명자료를 냈다. "4월 초 혁신감사포럼 측이 예산처에 해외 사례를 벤치마킹할 계획이라고 구두로 얘기했다. 하지만 지역.시기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중략) 따라서 예산처가 묵인했다는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다.

예산처의 해명이 사실이라면 큰일이다. 감독권을 쥔 예산처가 공기업 감사들이 어디 가서 무엇을 배울지 확실히 점검했다면 이번 파문은 아예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예산처와 공기업 감사들의 반론권은 당연히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물타기식 해명이 진실을 흐릴 수 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

감사는 투명성이 생명이다. 감사원 원훈(院訓)은 '바른 감사 바른 나라' '공명정대(公明正大)'다. 감사가 제대로 서야 국가가 반듯해지고, 남의 잘못을 따지고 징계하려면 자신의 몸가짐부터 단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공기업 감사가 잘못을 저질렀다면 구구한 변명보다 솔직히 털어놓고 사과하는 것이 본분을 지키는 길이다.

국민의 분노 속에서 청와대가 진상조사에 나선다고 한다. 그러나 찜찜한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청와대가 같은 정치적 식구(?)들에게 과연 추상같이 진실을 캐낼 수 있을까?

윤창희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