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구멍뚫린 개표인가(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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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대법원의 재검표 결과 서울 노원을구의 당락이 뒤바뀐 사실은 늦게나마 민의를 확인했다는 점에서는 다행이지만 국가적으로는 창피한 일이다. 지금 사회가 첨단기술시대로 들어가고 국민의식이 선진국 수준을 바라보는 이 개명천지에서 이런 케케묵은 불상사가 재연된 것은 국가적으로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당락번복이 개표부정에 의해서인지,단순한 집계착오인지에 관해 아직 단정할 수는 없으나 진상을 밝히는 것이 시급하다. 만의 하나라도 고의적인 부정행위로 밝혀질 경우 사안은 심각하며 관련자에 대해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한 형사문책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과거 악명높던 자유당시대와 같은 투·개표 부정은 이제 거의 자취를 감췄고 그런 원시적 부정행위가 더이상 발을 붙이긴 어렵다고 생각해왔다. 다만 우리의 투·개표 과정이 아직도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크고 작은 실수가 항상 있을 수 있다고 보고 그런 점에서 개표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더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개선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믿는다. 현행법으로는 개표사무는 교사,또는 법원공무원이 주로 맡고 정당참관인이 교대로 감시케 돼있으나 고의든,실수든 부정과 착오가 발생할 소지는 항상 남아있다.
3·24총선후 실시된 네차례의 재검표에서 모두 오차가 발견된 것만 보아도 이런 사실은 분명하다. 따라서 개표의 정확성·공정성 확보를 위한 보다 근본적 방안이 나와야 하고 장기적으로는 우리도 투·개표를 컴퓨터화해야 한다. 이버 당락번복을 계기로 여야 각 정당은 대통령선거의 공정성을 강화하는 선거법 개정에 본격 착수해야 한다. 3·24총선의 재검표에서 본 것과 같은 오차·착오를 방지하고 부정소지를 원천봉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야당측은 이번 노원을구의 경우를 들어 정부·여당에 의한 전반적인 부정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야당주장에 어느 정도의 근거가 있는지는 속단하기 어려우나 3·24총선후의 재검표에서 대부분 미소하긴 하지만 여당표가 줄어든 현상을 주목하고 있다. 이번 노원을구처럼 당락이 바뀌지는 않았더라도 서울 서초을에서도 1백표 묶음의 야당표가 여당표로 잘못 계산됐고 여당이 낙선한 울산 중구에서도 표차가 더 벌어졌었다.
불과 3,4개구의 재검표결과를 놓고 전체를 판단하기는 어렵지만 민주주의의 기본인 선거에서 크든 작든 이런 잡음이 나와서는 안될 일이다. 여야정당과 선관위의 보다 철저한 개선방안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사법부는 이번과 같은 선거소송은 물론 의원이 당사자로 걸린 각종 소송의 재판을 촉진해 가짜 또는,무자격자가 의원직을 갖고 있지나 않은지 빨리빨리 판가름을 해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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