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냉방금지 타당한가/최훈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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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공공기관 냉방금지」에 관한 비판론이 공직사회에서 거세지고 있다.
비판론은 단순히 『더워서 능률이 안오른다』는 불평차원이 아니라 「행정철학의 부재」 또는 「통치권의 성격」에까지 뻗치고 있다.
주무부서 관계자들조차 『우리가 취한 조치가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특히 『자질이 우수한 공무원을 뽑아 좋은 사무환경을 제공하고 동기를 부여해 행정능률을 높여야 한다』고 믿는 젊은 테크너크랫일수록 더 비판적이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번 조치는 사무환경 개선이라는 「투입」요인을 완전히 무시한 비능률적 조치의 표상이라고 말한다.
이를테면 1백원을 써 1천원의 생산성 향상을 이룩해 내려는 거시적이고 능동적인 사고가 배제된채 「절약은 미덕」이라는 도시에만 사로잡혀 아예 1백원도 쓰지 않으려는 퇴행적 사고의 극치라는 것이다.
젊은 엘리트 관료들은 에어컨 가동중지로 정부 1,2청사에서 60일간 절약하는 돈이 1억3천여만원이라고 하나 밀폐된 청사에서 더위먹어 질식된 공무원이 잃는 「능률」의 액수는 그보다 훨씬 많으리란 논리를 펴고있다.
특히 이들은 재생지사용·복사지 이면활용과 같이 사용자에게 전혀 해악을 미치지 않는 절약과 능률을 희생시키는 절약은 명백히 구분돼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이 조치의 결정과정에 대해서도 『대안에 대한 충분한 논의나 일관된 원칙없이 「특은의 조치」를 즐기는 60∼70년대식 권위주의 행정이 되살아난 것』이라고 이들은 비판한다.
『관이 시작해야 민이 쫓아온다』는 확산논리 또한 오랜 관주도식 사고를 반영한 구태라는 지적이다.
공공기관 냉방금지는 전력공급 차질가능성에 대한 임시방편적인 고육책이다. 정부고위층은 일이 생길 때마다 임시변통에 매달릴 생각부터 한다. 고위공직사회도 젊은 관료들이 능동적이고 합리적으로 일할 수 있는 제도적·환경적 요인을 만들어주는 진취적 자세를 가질때가 됐다.
이번 냉방금지 조치를 통해 사회통념과 공직자 사회의 내부분위기가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 냉철히 재분석 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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