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지적 겸허히 수용하라(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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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각 정당의 대통령 후보들이 다투어 만들고 있는 사조직과 토론회 참석 등에 우려를 표명하고 경고공문을 보낸 것은 대통령 후보들에 대한 일종의 꾸지람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집권경쟁에 나선 대선후보들이 도덕군자일 수는 없으며 온갖 시비에 휘말릴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들인 만큼 그들의 언동은 그만큼 무게와 체통이 있어야 하고 일반사회의 「사표」까지는 아니더라도 「모범」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더욱이 결코 위법·불법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더 말할나위도 없는 최소한의 요청일 것이다.
그럼에도 얼마전 경주에서 열린 한국정치학회 세미나에서도 본 것처럼 후보들의 행보에는 이런 우리의 기대에 훨씬 못미치는 대목이 많았다. 선관위 지적대로 각종 단체의 토론회·간담회 등에 다투어 나가 사전선거운동에 해당됨직한 발언을 양산하고 적지않은 액수의 돈봉투를 주는 것이 예사였다.
뿐만 아니라 각 후보는 산악회다,동우회다 하여 사조직 확대에도 한창 열을 올리고 있는데 친목회라는 간판 아래 이런 조직이 선거운동에 동원되는 것은 뻔한 일이고,이는 명백한 불법이다.
이처럼 위법·불법적 요소의 사전선거 운동에 대한 선관위의 경고는 시기가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매우 적절하다고 본다. 정계와 일반사회의 모범이 돼야할 대선후보들이 일반인들에게도 있어서는 곤란할 위법시비에 걸리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더욱이 단체장선거에 관한 정부의 위법이 크게 문제된 후부터 법에 대한 국민의식이 매우 민감해진 사회분위기다. 14대국회가 법정기한안에 가까스로 개원된 한 까닭도 법대로 해야 한다는 세론이 일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한다.
이같은 사회분위기를 보거나 대통령 후보라는 막중한 체통을 생각하더라도 후보와 각 정당들은 자중하고 조심해야 마땅하다. 선관위의 지적과 경고를 겸허히 받아들여 다시 이런 꾸지람을 듣지않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 후보 자신들의 처신이 중요하다. 우리가 보기에 언제부터인가 정치권의 씀씀이가 헤퍼지고 커진 것 같고,특히 후보들을 포함한 고위간부들의 손이 커졌다. 수천,수만명의 사조직을 관리하는데도 엄청난 돈이 든다. 이렇게 돈을 쓰자면 그만큼 돈을 만들어야 하고 비밀의 장막에서 이런 돈을 만드는 과정에 우리정치의 고질이 있는게 아닌가.
우리는 전부터 역설해 왔지만 오늘의 높아진 국민수준과 달라진 사회분위기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본다. 후보들은 선관위의 걱정이나 끼치는 꾀죄죄한 옛날 방식에 얽매이지 말고 우선 대통령 선거법을 개정하고 시대의 요구에 맞는 새로운 접근을 보여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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