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금융계 「토지사기」충격(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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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보사령부 부지매각 사기사건에 금융기관들이 직접 관련됨으로써 신융사회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벌써 사채시장이 술렁거리고 일부 보험가입자들은 관련 보험사의 자산운용이 적정한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연일 최저치를 기록해온 증시는 이 사건의 여파로 더욱 냉각일로에 있어 정부 감독기관들이 서둘러 종합대책을 마련하지 않을 경우 사태는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79년의 율산그룹 부정대출사건이나 82년의 이·장 어음사기사건,83년의 명성그룹 부정대출사건 등을 통해서 정부가 수사와는 별도로 금융계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동시에 내놓지 않을 경우 금융산업이 혼란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금융시장이 개방되고 자유화 폭이 확대되고 있는 현시점에선 더욱 그렇다. 이번 사건에는 제일생명과 국민은행 등이 관련되어 있으므로 다음과 같은 문제들에 대한 신중한 검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첫째,금융기관들이 관련규정을 얼마나 지키고 있느냐 하는 문제다. 제일생명은 정보사 부지를 매입키로 계약하고서도 정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으며,또 땅 매입을 위해 2백43억원의 어음을 발행하고도 나중에 사기를 당했다해서 시중에 유통중인 어음의 일부를 부도처리해 버렸다. 상호신용금고 등이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나머지 어음들도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다. 더구나 이 어음들은 신용금고들이 일정한도를 넘어서까지 할인해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금년 상반기들어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되어 도산이 늘고 있는 터에 어음부도의 파장이 확대된다면 사채시장의 동요는 시중의 자금줄을 조이게 될 것이다.
둘째,국민은행 대리가 개인용 컴퓨터를 조작해서 가짜 통장을 발행한 것과 같은 컴퓨터 범죄를 어떻게 방지하느냐는 문제다. 전반적으로 모든 금융기관들의 창구 직원들은 컴퓨터를 비교적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나 관리자들의 경우 아직도 컴퓨터 문맹이 많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 때문에 부하 직원들이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예금 수납업무 등 컴퓨터화한 각종 프로세스를 이해하지 못해 상급자로서의 감독기능이 떨어져 범죄발생의 기회로 이용되는 측면이 있다.
셋째,이번 사건과 관련해 제일생명과 국민은행의 최고책임자들은 부동산 매입 및 거액의 지출을 몰랐으며,예금서류상의 잘못도 없다는 식의 무책임한 발언을 하고 있어 문제다. 고객을 왕으로 모시겠다는 금융기관의 장들이 일반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주장을 하는 것은 신용을 생명으로 하는 금융업무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행위다. 고객의 자산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지를 명백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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