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해에 빼앗긴 새싹들의 배움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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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어린이 여러분, 그동안 숨도 제대로 쉬지못하는 고통속에서 공부하느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새학교로 옮기는 월요일부터는마음껏 숨쉬며 열심히 공부해 꼭 훌륭한 사람이 돼야합니다.』
4일오전 경남울주군온산면당월리 덕신국교 당월분교 (분교장 지강식·49)에서는 산업화에 따른 인간 황폐화의 상징적 의식이 거행되고 있었다.
국내 최대의 비철금속단지로 공해의 메카로 알려진 온산공단안에 자리잡고있는 당월분교가 공해에찌들다못해 개교27년만에배움의 양을 마감하는 「마지막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이라곤 고작 19명1학년 2명,2학년 3명,3학년 3명,4학년 5명,5학년 2명, 6학년 4명이 전부인 이학교의 마지막 수업을 하면서 지분교장이 마지막으로 준 이날과제는 「당월시절에 대한스케치」.
학생들은 창문을 굳게닫았음에도 이날따라 유난히 지독한 냄새에다 이별의 슬픔까지 겹친듯 연신코를 훌쩍거리면서도 교실창너머로 자욱한 연기 글뚝과 함께 운동장에서 뒤놀던 장면이나 공해를 피해 10여km 떨어진 대운산으로 소풍가던 기억을 더듬어 그림을 그리고 글짓기를 했다.
『이 애들이 무슨 죕니까. 살만한 사람은 다떠나고 극빈가정의 애들만 남아있는데다 폐교선고이후 아무런 지원도 못받아 버린 자식취급을 받아온 것은 두고 두고 잊지 못할겁니다.』
3, 5, 6년 담임을 맡아온 제환도교사(38)는 공해속의 고도같았던 그동안의 학교생활을 털어놓으며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조만간 울산시하수종말처리장으로 변하게될 운명의 당월분교지만 공단이 들어서기전까지만해도 전혀 남부러울것이 없던 터.
반농반어마을인 당월·우봉리주민들은 마을앞 바다와 온산벌에서 수확하는농수산물로 대부분이 중상의 풍요를 누렸기때문.
특치 전성기탈 수있는80년대초에는 1천여가구4천여주민들이 몰려살아 13학급의 교실이 부족해2부제 수업을 할때도 있었다. 하지만 점차 공단확장과 더불어 「국내 최악의공해지옥」 으로 바꿔면서주민수가 줄어들기 시작해지난 3월1일자로 덕신국교를 모교로 하는 분교신세가 되었다가 이번에 폐교를 하게된 것.
『우렁찬 온산공단 둘러있는 곳,치솟은 공장들로 숲을 이룬다. 이 속에 자리잡은 당월학교는 내일의새일꾼 길러내는 터.』
80년대초 만들어진 교가를 끝으로 마지막 수업은끝나고 장학사를 비롯, 그흔한 축하객 한명없이 19명의 「꽃」들은 공해자욱한 교문을 나서 뿔뿔이 흘어져 갔다.
『아침에 출근하면 공장굴뚝부터 보고 공해가 심해수업이 어려울 지경이면공장에 항의전화한 적이 한두번 아닙니다.』
눈물속에 제자를 떠나보내는 지분교장의 뒤편 교실벽에는 「나의 장래희망」이란 글이 나부끼고 있었다.
『훌륭한 기술자가 되어 무공해공장을 만들겠다.』
【울산=김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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